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하는 ‘종교적 병역거부’를 처벌 대상으로 삼아선 안 된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이 2004년 종교적 병역거부에 대해 유죄를 확정한 기존 판례를 14년 만에 뒤집은 것이다. 시민들과 종교계는 개인의 종교적 신념을 앞세워 국방의 의무를 회피하겠다는 것은 국가의 존립과 직결되는 위중한 문제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종교적, 양심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 병역법상 ‘정당한 사유’로 인정되면 누가 군대에 가려 하겠느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 2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모(34)씨의 상고심에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창원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 오씨는 2013년 7월 육군 현역병 입영통지서를 받고도 입영일부터 3일이 지나도록 입영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종교적 병역거부가 병역법상 처벌의 예외에 해당하는 ‘정당한 사유’라고 판단했다. 또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을 인정해야 자유민주주의가 그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그 신념에 선뜻 동의할 수 없더라도 관용하고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대체복무제 도입 여부와 종교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형사처벌은 별개라는 입장도 밝혔다. 대체복무제가 마련돼 있지 않아도 종교적 병역거부자에게 정당한 사유가 인정된다면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지난 6월 종교·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에 적용되는 병역법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다만 대체복무제를 마련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 보고 국회에 2019년 12월 31일까지 입법을 마련하라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종교적 병역거부를 무죄로 본 의견에는 9명의 대법관이 참여했다. 4명의 대법관은 “개인적 신념이나 가치관은 정당한 입영 불응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유죄 의견을 냈다.
대법원 선고 직후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7월 23일 대법원에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법상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의견을 제출했다”며 환영 입장을 내놨다.
반면 종교계는 대법원 판단에 대해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엄기호 목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99%가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만큼 이번 판결은 특정 종교집단에 대한 특혜로 비칠 수밖에 없다”며 “종교를 앞세워 국방의 의무를 망각하겠다는 건 국가의 존립과 직결되는 위중한 문제”라고 밝혔다. 한국교회총연합회 공동대표회장 전명구 감독회장도 “남북 대치라는 특수상황 속에서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인 국방의 의무를 종교적 이유로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은 매우 실망스럽다”며 “향후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이들과의 형평성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안대용 최예슬 장창일 기자 dand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