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채혈식 ‘연속혈당측정기’ 1년에 소모품 값만 500만∼600만원
해외직구로 측정기 사서 쓰다 고발된 소아 당뇨병 환아 엄마 사연 듣고
文 대통령이 나서 환자 지원 약속
소아 당뇨로 알려진 ‘1형 당뇨’ 대상 내년 1월부터 센서에 70% 건보 적용
상반기 중 장비 본체도 급여화 추진… 12일 열리는 건정심 회의서 확정
여섯 살인 수진(가명)이는 지난해 2월 1형 당뇨병(일명 소아당뇨병) 진단을 받았다. 체내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인슐린) 분비 기관인 췌장 기능이 완전히 망가져 인슐린이 아예 나오지 않는다.
하루 5∼6차례 손끝에서 피를 뽑아 혈당을 재고 그에 맞춰 인슐린 주사를 맞는 게 수진이의 일상이다. 부모는 늘 살얼음판을 걷는다. 혈당 측정에 조금이라도 소홀하면 저혈당이나 고혈당 쇼크가 와 위험 상황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 강모(41)씨는 “손에 바늘을 찔러 채혈할 때마다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저리다”고 했다.
올해 유치원에 들어간 뒤 엄마의 걱정은 더 커졌다. 집에선 자신이 직접 혈당을 측정하고 인슐린 주사를 놔 주는데, 유치원에선 아무래도 도움의 손길이 덜 갈 수밖에 없어서다. 유치원에서 먹는 간식이나 활동량에 따라 혈당 상황은 급변할 수 있다.
강씨는 “아이가 유치원에 있는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일이 손에 안 잡힌다. 매일 가방에 혈당측정기를 넣어주고 선생님한테 부탁도 하지만 늘 불안하다”고 했다. 머지않아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주변 눈을 피해 화장실 같은 곳에 숨어서 피를 뽑고 인슐린 주사를 놓아야 하는 어려운 환경에 처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더 걱정이 앞선다.
일부 1형 당뇨병 환자들은 일반(채혈식) 혈당측정기의 불편함 때문에 매번 피를 뽑지 않고도 24시간 혈당을 재고 자동으로 알려주는 최신 연속혈당측정기를 구해 쓰고 있지만 수진이는 형편상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들어가는 소모품 값이 만만치 않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강씨는 “응급상황 대처나 합병증 예방을 위해선 제때 정확한 혈당 측정과 인슐린 투여가 중요한데, 연속혈당측정기를 쓰면 가능한 걸로 안다. 매번 채혈하는 불편함도 없고. 하지만 비용 부담이 커 선뜻 바꾸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일부 연속혈당측정기는 스마트폰과 연동돼 멀리 떨어져 있어도 혈당치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강씨는 “아이 곁에 없어도 스마트폰으로 혈당치를 보고 잘못된 것 같으면 곧바로 유치원에 전화해 조치를 취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또 다른 1형 당뇨병 환아인 네 살 현우(가명)는 생후 17개월부터 팔에 연속혈당측정기와 인슐린펌프(인슐린자동주입기)를 달고 지내 왔다. 연속혈당측정기의 경우 엄마가 당시 국내에는 들어와 있지 않은 해외 제품(11월부터 국내 출시)을 인터넷으로 직접 구입했다. 피부 아래에 삽입한 지우개 크기의 센서가 5분마다 혈당을 재서 모니터나 스마트폰으로 알려준다. 고혈당이나 저혈당에 빠질 위험을 보이면 즉각 알람해 주는 기능도 있다.
혈당 측정의 효율성과 편리성이 아주 좋지만 1년에 500만∼600만원이나 드는 소모품 값이 부담이다. 현우 엄마는 “맞벌이 월급 400만원으로 대출금 갚고 아이 병 치료에 이만큼 들어가니 생활이 빠듯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1형 당뇨 가족 한시름 덜 듯
조만간 수진이와 현우 같은 1형 당뇨병 환자 가족의 시름이 한층 덜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내년 1월부터 연속혈당측정기에 쓰이는 고가(高價) 소모성 재료인 ‘센서(전극)’에 건강보험을 우선 적용하고 상반기 중에 연속혈당측정기와 인슐린펌프 등 장비 본체도 급여화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5일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12일 열리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회의에 최신 혈당관리 의료기기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방안을 보고하고 확정할 계획이다.
연속혈당측정기 건강보험 지원은 최근 당국 신고 없이 해외 직구한 연속혈당측정기를 사용하다 고발돼 검찰 조사를 받은 소아당뇨병 환아 엄마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고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1형 당뇨 환자 지원을 약속하면서 추진됐다.
그간 2형 당뇨병에 비해 환자 수가 적은 1형 당뇨병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정책적 지원은 부족했다. 건보공단에 2011부터 지난해까지 등록된 1형 당뇨 환자는 2만명을 조금 넘는다. 치료법이 없는 난치병으로 알려진 1형 당뇨는 평생 인슐린 투여를 통해 혈당을 관리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현재 1, 2형 당뇨와 임신성 당뇨 환자가 쓰는 일반 혈당측정기용 시험지(strip), 채혈침, 인슐린주사기, 인슐린주삿바늘 등 소모성 재료 4개 품목에는 건강보험 혜택(본인부담 10%)이 주어지고 있다. 지난 8월부터는 인슐린펌프용 주사기와 주삿바늘도 건보 지원 대상에 포함됐다. 다만 인슐린펌프 본체는 비보험으로 적게는 190만원, 많게는 600만원(연속혈당측정기 내장형)을 주고 사야 한다.
전부 비보험인 연속혈당측정기 초기 구입비용은 65만∼100만원이다. 이후 소모품 구입에 돈이 많이 든다. 1주일마다 한 번 바꿔줘야 하는 측정 센서(개당 7만∼11만원) 값으로 월 28만∼44만원이 들고 30만원가량 하는 송신기(트랜스미터·혈당치를 스마트폰으로 전송)도 정기적으로 교체해야 한다. 국내에는 글로벌 기업의 연속혈당측정기 제품 2개가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고 판매되고 있다. 1개 제품은 식약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복지부와 건보공단은 올 초부터 환자단체와 당뇨병학회, 업체 등과 고가 연속혈당측정기의 건강보험 급여화 방안에 대해 수차례 논의를 거쳐 어느 정도 의견접근을 봤다.
건보 적용, 연령 제한 안 둬
정부안에 따르면 내년 초부터 인슐린 투여가 꼭 필요한 1형 당뇨병 환자에게 우선 건강보험을 적용키로 했다. 연령 제한은 없다. 당초 20세 이하 소아청소년 1형 당뇨 환자에게 먼저 건보 혜택을 주는 방안을 고려했으나 연령 제한을 두지 않기로 방침을 바꿨다. 1형 당뇨의 경우 나이에 상관없이 인슐린 투여가 꼭 필요하다는 전문가 지적에 따른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건보공단 등록 1형 당뇨 환자의 20∼30%가 연속혈당측정기를 사용하는 걸로 추정돼, 건보 지원 대상은 2500∼5000명 되는 걸로 추산된다. 다만 건보 적용이 이뤄지면 대상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지원 대상 품목은 연속혈당측정기에 사용되는 ‘센서’로 본인부담 비율은 30%로 잠정 결정됐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기존 소모성 재료의 본인부담률(10%)보다 다소 높게 책정됐다. 센서 값이 기존 소모품에 비해 고가인 점이 고려됐다. 센서의 경우 기존 소모성 재료보다 10배 정도 비싸다.
지원 방식은 지금처럼 ‘현금 급여’(산정 기준 금액은 센서 1개당 7만원)로 이뤄진다. 환자가 6개월 이내 의사 처방을 받아 센서를 구입·사용한 뒤 건보공단에 비용을 청구하는 방식이다. 전체 비용의 70%를 공단이 현금으로 지급한다.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김미영 대표는 “환자들이 느끼는 현실적 부담을 감안해 본인부담률은 20%를 넘지 않았으면 한다. 또 정기적으로 바꿔줘야 하는 송신기(트랜스미터) 비용도 만만찮은 만큼 하루 빨리 지원 대상에 포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내년 4월까지 연속혈당측정기와 인슐린펌프 등 장비 본체의 건보 지원 여부를 검토해 5월쯤 건정심에 보고할 방침이다.
2형 당뇨 환자 “우리도 건보 지원해 달라”
1형 당뇨 환자에 한정해 연속혈당측정기 사용에 대한 건강보험 지원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2형 당뇨 환자들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며 반발하고 나섰다.
2형 당뇨병은 인슐린 분비 기능이 완전 파괴되지는 않은 유형으로, 상당수는 인슐린 투여를 않더라도 운동이나 생활습관 개선, 약물 투여로 관리가 가능하다. 국내 2형 당뇨병 환자는 올해 기준 500만명을 넘는 걸로 파악되고 있다.
당뇨병인슐린펌프치료환우회 성경모 회장은 “연속혈당측정기는 1형 당뇨병 환자뿐 아니라 2형 당뇨병 환자에게도 필수적”이라며 “정부가 1형 당뇨 환자에게만 건보 적용을 고려하는 것은 헌법상 평등권을 위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최근 국회와 복지부 국정감사장 앞에서 “2형 당뇨병 환자의 연속혈당측정기 사용에도 건보 지원을 하라”며 잇따라 시위를 벌였다. 성 회장은 “1, 2형을 막론하고 당뇨 환자 가운데 인슐린펌프 사용자 등 적극적인 인슐린 치료가 필요한 이들은 하루 7회 이상 혈당을 측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인슐린펌프 치료를 받는 1, 2형 당뇨 환자는 5만명 가량으로 추산된다. 건보공단도 당뇨병학회의 연구용역 결과에 따라 향후 대상자 확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내분비내과 김재현 교수는 “2형 당뇨병 전부로 확대하기엔 재정 부담이 너무 크다”면서 “다만 향후 1형 당뇨에 준하는 2형 당뇨 환자, 하루 3회 이상 인슐린 주사가 필요한 2형 당뇨, 인슐린 투여가 필요한 임신성·임신중 당뇨 환자, 혈당 관리가 필수적인 당원병과 고인슐린혈증 저혈당 환아 등에 대한 건보 지원 확대는 타당해 보인다”고 말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