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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띠로 때리고 커터칼로 위협하고…갑질이 일상인 주변의 양진호들







시민단체 제보 사례 225건 중 상식 벗어난 ‘양진호형’ 23건
물리적 폭행 아니면 처벌 애매 ‘양진호 금지법’ 빨리 통과돼야


그는 ‘주유소 노비’였다. 40대 남성 A씨가 휴식·식사 시간 없이 하루 14시간을 근무하고 받은 월급은 고작 100만원. 쉬는 날 일하면서도 3분이 늦어 욕설을 들었다. 사장의 친인척에게 얼굴을 폭행당한 뒤에도 사장은 “내 집에서 일하려면 그 정도는 참아야 한다”고 말했다. A씨는 지난 5개월간 일하면서 생긴 불면증과 스트레스로 병원치료 후 약을 먹고 있다.

B씨는 회식자리에서 상사가 소주병을 거꾸로 들고 때리려 해 공포에 떨었다. 최근에는 상사의 목졸림도 당했다. 고객들도 볼 수 있는 유리창 너머 영업부스 안에서였다.

직원에게 폭언·폭행을 일삼고, 활로 닭을 쏘게 하는 등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엽기 갑질’이 논란인 가운데 이 같은 직장 내 괴롭힘이 사회 곳곳에 만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는 4일 A씨 등의 사례를 공개하며 이른바 ‘양진호 금지법’(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지난달 단체에 들어온 제보 중 신원이 확인된 건은 총 225건이다. 이 중 ‘양진호 갑질 사례’ 즉, 폭행·준폭행·악질폭언·황당 잡무지시 등은 23건이었다. 직장갑질119는 “직원을 하인으로 여겨 폭행과 엽기 갑질을 일삼는 ‘우리 회사 양진호’는 곳곳에 있다”고 지적했다.

C씨는 같은 회사에 다니는 부인 앞에서 상사에게 허리띠로 맞았다. 상사는 회식자리에서 뱀춤을 춘다며 허리띠를 풀어헤친 뒤 C씨만 때렸다. “씨X” “개X끼야” 등 욕설은 기본이고, 부하 직원에게 물컵을 던지기도 했다.

성희롱 사례도 흔했다. 여성 직장인 D씨는 외투에 생리대를 넣어뒀는데, 상사가 이를 꺼내 직장동료들 앞에서 흔들어댔다. D씨는 상사에게 왕따를 당하며 2년 가까이 홀로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E씨는 성희롱을 당한 뒤 인사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외려 가해자로부터 명예훼손·무고 등 협박을 받았다. 상사는 사무용 커터칼로 찌르는 흉내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처벌은 요원하다. 물리적 폭행이나 성폭력은 기존 형법으로 처벌할 수 있지만 ‘양진호 갑질’처럼 살아 있는 생닭을 칼로 자르게 하는 가혹행위나 폭언·욕설은 처벌 규정이 마땅치 않은 탓이다. 이 때문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9월 근로기준법 개정안인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을 통과시켰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일부 야당 의원이 개정안 내용 중 ‘정서적 고통’의 개념이 모호하고 ‘업무 환경’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에 직장갑질119는 “이완영,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괴롭힘의 정의가 모호하다는 이유로 ‘양진호 금지법’을 통과시키지 않고 있다”며 “개정법률안은 징계 대상 행위의 판단 근거가 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며, 프랑스·캐나다 등 해외 입법례와 비교해도 명확하다”고 말했다. 또 “‘직장 내 괴롭힘’ 정의 규정은 ‘직장 내 성희롱’ 정의와 비교해도 불명확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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