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10개월 만에 제재 복구
백악관 “전례없이 가장 강력” 사실상 생명줄 틀어막는 셈
180일간 예외 8개국 지정 예정, 국제유가 낮춰 최대 효과 노려
이란 “사실상 항복 요구” 반발, 리알화 폭락 등 경제위기 우려…유가 상승·유럽 불참은 호재
EU·英·佛·獨, 공동성명 통해 미국의 이란 제재 복원 비판
미국 정부가 5일 0시(현지시간, 한국시간 5일 오후 2시)부터 원유, 석유제품 및 금융 거래 금지를 골자로 한 대(對)이란 2차 제재를 시행한다. 2015년 7월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타결에 따라 이듬해 1월 핵무기 개발 의혹에 대해 이란에 부과한 제재를 완화한 지 2년10개월 만의 제재 전면 복구다. 강력한 제재를 통해 이란이 핵프로그램을 완전히 포기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지만 이란은 미국에 대해 항전 의지를 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5월 JCPOA 탈퇴를 공식 선언한 뒤 8월 1단계 대이란 제재를 재개했다. 이번에 재개되는 2단계 제재는 이란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원유 및 석유제품과 이란과의 금융 거래를 막는다는 점에서 ‘본 제재’인 셈이다.
미국의 전면 제재가 당장 효력을 발휘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미국은 제재 시행 이후에도 예외적으로 8개국에 180일에 한해 이란산 원유 수입을 허용키로 했다. 국제유가를 낮춰 이란 제재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미국 정부는 예외국 8개국을 5일 발표할 예정이다. 한국은 이란산 콘덴세이트의 수입과 한국·이란 결제시스템 유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미국에 수차례 개진해 왔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최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한국이 제재 예외국 지위를 획득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발휘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블룸버그통신 등 미국 언론은 최근 예외국으로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인도 일본 터키 등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제재 복원에 맞서 이란은 ‘저항 경제(Resistance Economy)’를 천명하며 장기전 채비에 들어갔다. 핵무기 개발의 완전 포기와 함께 역내 군사 개입,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중단 등 트럼프 행정부가 내민 수정된 핵합의 요구가 사실상 ‘항복’이라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3일 “제재를 통해 이란 경제를 붕괴하려는 미국의 시도는 이번에도 실패할 것”이라며 항전을 다짐했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40년에 걸친 미국의 제재 동안 ‘저항 경제’의 노하우를 축적했다. 저항경제는 자급자족 구조를 구축해 최대한 외부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에너지와 식량을 대부분 자급자족할 수 있는 데다 안정된 통치 체제를 갖춘 이란에서 그동안 효력을 발휘해 왔다.
물론 이란 정부 역시 미국의 제재 복원에 따른 경제위기를 우려하고 있다. 이란 리알화의 가치가 폭락했고, 물가는 급등세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비공식 환율은 2016년 1월 달러당 3만 리알에서 현재 15만 리알까지 5배로 올랐다.
이란 정부는 외화 유출을 최소화하면서 러시아 중국 터키 인도 중앙아시아 등과의 관계에 공을 들였다. 그나마 2014년 중반부터 계속된 저유가가 최근 상승세라는 것은 이란으로선 불행 중 다행이다. 이란은 올해 상반기 하루 평균 250만 배럴의 원유를 국제시장에 공급했는데, 유가가 오르면 제재로 원유 수출량이 줄어도 수출 금액을 유지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이란의 원유 수출을 금지했던 2012년 제재와 달리 유럽연합(EU)이 이번 미국의 제재 복원에 동참하지 않은 것도 이란에 호재다. 하지만 5일 제재 시행 이후 EU가 트럼프 행정부에 굴복한다면 이란으로선 한층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EU와 영국 프랑스 독일은 4일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의 대이란 제재 복원을 비판했다. EU 등은 “유엔 안보리에서 만장일치로 승인한 JCPOA는 핵확산 금지 체제와 다자외교의 핵심 요소”라며 “미국의 탈퇴에도 불구하고 JCPOA는 계속 작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스라엘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성명을 통해 “역사적 결정을 내린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하다”고 환영했다.
장지영 이택현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