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올해 처음 열린 제1회 중국국제수입박람회에서 미국의 보호무역과 일방주의를 비판하는 작심발언을 했다.
미국을 겨냥해 “문을 걸어 닫으면 낙후된다”고 비난하면서 중국은 향후 15년간 40조 달러어치의 상품·서비스를 수입하겠다고 밝혔다. 폐쇄적인 미국과 달리 ‘자유무역’을 존중하는 ‘수입 대국’임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는 며칠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 후 보여줬던 화해 무드와 다른 분위기여서 주목된다.
시 주석은 5일 상하이 국가회의전람센터(NECC)에서 열린 국제수입박람회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더욱 아름다운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각국이 협력해 공동 발전을 실현해야 한다”며 “개방은 진보를 가져오지만 문을 걸어 닫으면 반드시 낙후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각국이 장벽을 없애고 개방을 확대하면 세계 경제는 순환이 잘되지만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거나 문을 걸어 닫고 고립되면 건강한 발전을 할 수 없다”며 “각국은 선명한 기치로 보호주의와 일방주의를 반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이번 수입박람회를 국제무역 발전사의 ‘일대 창조적 조치’라고 자평하며 시장 문을 더욱 활짝 열겠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향후 15년간 중국이 각각 30조 달러, 10조 달러어치의 상품과 서비스를 수입하겠다는 계획을 직접 밝히며 ‘세계의 시장’으로 발돋움하겠다는 의지도 나타냈다.
시 주석은 미·중 무역전쟁과 관련해선 “중국 경제는 작은 연못이 아니라 큰 바다이며, 거센 비바람과 눈보라가 치는 날이 없으면 큰 바다가 아니다”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시 주석의 전반적인 발언 내용은 미·중 무역전쟁에 물러서지 않고 ‘마이웨이’를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달 말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서도 시 주석이 공세적 태도를 유지할지 주목된다.
시 주석이 수입박람회에서 개방과 시장 확대를 얘기했지만 서방 세계는 냉담한 분위기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박람회가 구 사회주의권 국가들과 일대일로(一帶一路) 관련국에 치우친 ‘그들만의 잔치’로 끝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상무부는 이번 박람회에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관련된 국가의 기업 1000여곳이 참가한다고 발표했다. 전체 130개 국가에서 3000여개 기업이 참가하는데 이 중 3분의 1 이상이 일대일로 국가들이다. 또 박람회에는 전 세계 정상급 인사가 18명 참석했는데 이 중 G20 국가수반은 러시아뿐이다.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인 월마트와 프록터 앤 갬블, 유니클로, 아디다스 등은 본사 간부들은 참석하지 않고 중국 지사장만 대표로 파견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박람회 참여 기업들이 까다로운 중국 정부의 판매 승인 절차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화장품, 세제 등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중국계 미국인 피터씨는 상하이박람회에 12개 부스를 빌려 참여할 예정이지만, 아직 중국에서 판매 승인을 받은 제품이 하나도 없다고 호소했다. 또 한국의 애니메이션과 게임 등 콘텐츠 기업 12곳이 박람회장에서 중국 바이어들에게 공개하려 했던 콘텐츠 쇼케이스 영상이 중국 당국에 의해 상영이 금지되는 등 중국식 규제는 여전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