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알프스’. 경남 밀양시 산내면과 경북 청도군 운문면, 울산 울주군 상북면 등에 걸쳐있는 높이 1000m 이상 되는 산군(山群)을 일컫는 말이다. 가지산(1241m), 운문산( 1188m), 천황산(1189m), 재약산(1108m), 신불산(1159m), 영축산(1081m), 고헌산( 1034m), 간월산(1069m) 등이 유럽의 알프스처럼 아름다워 붙여진 이름이다. 이 가운데 밀양시에 포함되는 천황산(사자봉), 천황재, 재약산(수미봉), 사자평습지로 이어지는 능선에 억새가 장관을 이룬다. 억새밭에 이어 그윽한 계곡, 층층의 폭포, 기암괴석이 산수미를 뽐낸다.
1000m가 넘는 산에 오르려면 적지 않은 발품을 팔아야 한다. 하지만 영남알프스얼음골케이블카를 이용하면 단숨에 1020m까지 오를 수 있다. 산행 경험이 적거나 체력에 자신이 없어도 어렵지 않게 은빛 억새를 즐길 수 있다. 케이블카의 선로 길이가 1.8㎞. 하부 승강장에서 상부 승강장까지 10분 걸린다. 상부 승강장에 내리면 시원한 전망이 감탄사를 터뜨리게 하지만 아직 감동하기엔 이르다. 케이블카 상부 승강장에서 천황산은 1시간∼1시간30분, 재약산은 2시간∼2시간30분 걸린다.
나무데크를 따라 10여 분 오르면 주변 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가 있다. 동쪽으로는 능동산이 보이고 그 왼쪽으로 영남 알프스의 최고봉 가지산, 운문산 등이 이어진다. 그 사이에 백운산이 눈에 들어온다. 백운산을 이루는 화강암이 ‘호랑이 형상’을 그려내고 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내면 일대가 아늑하게 앉아 있다.
잠시 숨을 고르고 호젓한 숲길을 조금 더 가면 샘물상회 갈림길에 닿는다. 천황재로 바로 이어지는 임도가 있지만 천황산 정상을 향한 능선에 올라선다. 운동화를 신고 걸어도 될 만큼 길이 좋고 오르막도 가파르지 않다. 등산로 양옆으로 솜털 같은 억새꽃이 바람에 나부끼며 은빛 물결처럼 반짝인다. 파란 하늘을 향해 끊임없이 손짓하는 억새를 보고 걷노라면 힘든 줄 모르고 정상에 닿는다.
산세가 수려해 삼남금강(三南金剛)이라 불리는 천황산은 영남알프스의 소맹주 격이다. 안으로는 목장이 들어설 만큼 부드러운 산세를 품고 있지만, 바깥쪽은 범접하기 어려운 깎아지른 절벽이 위엄을 뽐낸다. 먹잇감을 노려보는 사자의 형상을 한 바위가 위압적이다.
천황산에서 천황재는 1㎞, 재약산은 1.8㎞다. 천황산에서 천황재, 재약산, 사자평습지로 이어지는 코스는 ‘영남알프스 하늘억새길’ 3구간 사자평억새길의 하이라이트다. 계단을 따라 해발 800m의 안부 천황재에 내려서면 사방이 광활한 억새밭으로 둘러싸인 넓은 데크가 있다. 간식이나 도시락을 먹고 쉬어 가기에 좋다. 천황재에서 재약산 가는 길은 다소 험하다. 계속 오르막이라 다소 힘든 구간이다. 하지만 울창한 수림을 지나며 낙엽 깔린 고운 흙길을 밟는 운치가 발을 이끈다.
재약산은 신라의 한 왕자가 이 산의 샘물을 마시고 병이 나아 ‘약이 실린 산’이라고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 정상에 이르면 수고가 전혀 아깝지 않은 풍경이 선물처럼 주어진다. 발아래 광활한 사자평습지가 품에 안길 듯 와락 달려든다. 그 너머로 멀리 울주군의 간월산과 신불산, 영축산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억새로 유명한 사자평은 약 4㎢(120만평) 규모로 국내 최대 억새군락지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스키장을 만들기 위해 숲을 베어내고 초지를 만든 곳이다. 하지만 눈이 많이 내리지 않는 기후 탓에 스키장 개발은 백지화됐다. 6·25전쟁 이후 화전민이 불을 놓아 나무를 태우고 밭을 일구면서 평원이 형성됐다. 한때는 화전민 80여 가구가 모여 살았다. 이곳에 고사리분교(산동초등학교 사자평분교) 터가 있다. 1966년 1월 29일 개교해 졸업생 36명을 배출하고 1996년 3월 1일 폐교됐고 1999년 교실은 철거됐다.
이제 ‘옥류동천’으로 내려선다. 곧바로 까마득한 두 개가 연이어 떨어지는 층층폭포가 나타난다. 폭포의 거대한 물줄기가 떨어지면서 일으키는 물보라가 햇빛을 받아 옅은 무지개를 펼쳐놓는다. 두 개의 폭포 가운데 놓여 있던 현수교 대신 아래쪽 폭포 아래에 데크다리와 전망대가 놓였다. 올려다보는 폭포가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하다.
이어 흑룡폭포를 만난다. 멀리서 볼 수 있도록 전망대가 길 바로 옆에 설치돼 있다. 높은 절벽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깊은 소(沼)를 거쳐 또다시 폭포가 돼 떨어진다. 폭포 위쪽 암봉과 주변 단풍이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낸다. 데크길과 부드러운 흙길을 딛고 내려서면 길은 표충사로 이어진다.
밀양=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