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고을 광주(光州)를 품고 있는 산이 스물한 번째로 국립공원의 반열에 오른 무등산(無等山)이다. ‘무등’에는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 가을이면 무등산 능선에 억새가 핀다. 무등산 억새 산행은 어머니 가슴처럼 푸근함을 더한다.
무등산 오르는 길은 고개와 능선에 따라 다채롭다. 가장 일반적인 탐방로는 원효사 지구 원효 분소에서 출발해 서석대에 오른 뒤 장불재를 돌아오는 코스와 증심사 입구에서 시작해 중머리재, 장불재를 거쳐 서석대에 오르는 코스다.
해발 617m인 중머리재에 올라서면 작은 능선들이 아득하게 이어진다. 그 능선마다 억새가 향연을 펼치고 있다. 장불재에서 백마능선으로 길을 잡으면 완만한 곡선을 따라 억새숲 사이를 가로지를 수 있다. 장불재에서 바라보는 입석대, 서석대 등 1000m 높이의 주상절리대는 천연기념물(465호)로 지정돼 있다. 주상절리대는 흐린 날이면 구름에 휩싸여 귀한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인왕봉, 지왕봉, 천왕봉을 품은 무등산 정상부는 공군부대 주둔지로 평소에는 탐방객이 드나들 수 없는 금단의 구역이다. 하지만 1966년 군부대 주둔 이후 45년만인 2011년 5월 14일 처음 개방됐다. 이후 매년 봄·가을여행주간에 각각 하루 정상이 개방된다. 미사일 기지가 있는 천왕봉(해발 1187m) 바로 아래 해발 1180m인 지왕봉과 인왕봉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정상으로 출발하는 곳은 서석대다. 코스는 서석대→부대 후문→인왕봉·지왕봉→부대 정문에 이르는 0.98㎞ 구간으로, 일방통행이다. 군 관계자의 보안사항 설명을 들은 뒤 신분 확인을 거쳐 부대 출입이 가능하다.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지난달 27일 정상을 찾았다.
신분이 확인되면 열린 출입문과 철조망을 지나 정상으로 향한다. 억새밭을 헤치며 좁은 등산로에 발을 들여놓자 인왕봉이 눈앞에 다가선다. 등산객들이 여기저기서 감탄사를 연발하며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후문을 지나면 넓은 공터가 나온다. 등산객들이 휴식을 취하면서 무등산의 기운을 충전하고 있다.
지왕봉 전망대에 올라서자 콘크리트 구조물 등을 제거해 복원한 큰 바위산이 코앞에 있다. 반대쪽으로 눈을 돌리자 발아래 단풍이 물든 무등산이 화려한 자태를 뽐냈고 멀리 광주 시내와 광주호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날씨는 변화무쌍했다. 빗방울이 흩날리고, 바람이 거세 체감온도가 뚝 떨어졌다. 수시로 구름이 몰려가며 햇빛이 나는가 하면 다시 먹구름과 안개에 휩싸이는 등 변덕이 심했지만 구름에 싸인 풍경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기도 했다. ‘정상 개방’이라고는 하지만 군사시설이 집중돼 있는 천왕봉은 직접 만나볼 수 없고 먼발치에서 눈으로만 봐야 한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정문을 나서면 정상 아래 능선인 누에봉이다.
서석대에서 원효 분소까지는 무등산 옛길이 단장돼 있다. 무등산 국립공원 탐방센터에서 꼭 걸어보기를 추천하는 길로 숲길 코스 외에 능선 코스를 선택해 하산할 수 있다. 이곳 숲길은 대낮에도 어둠이 드리울 정도로 울창하다.
이제 광주의 역사를 만나러 간다. 여행은 광주시티투어 ‘광주 100년 이야기’를 콘셉트로 그려진다. 1980년대를 기준으로 1930년대의 광주와 역사, 그리고 미래를 향한 문화중심 도시 광주의 100년을 둘러보는 여정이다.
스토리 시티투어버스인 ‘광주 100년 이야기 버스’는 다른 지역의 시티버스와는 다르다. 주요 관광지를 나열식으로 소개하는 대신 핵심 관광지의 이야기를 연극과 음악 등으로 융합했다. 이야기 중심인 관광지는 1930년대의 ‘양림동 골목’, 1980년대의 ‘5·18민주광장’(오월광장), 2030년대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다. 100년의 세월을 각 시대 청년들의 삶으로 엮어간다.
여행을 이끄는 인물은 ‘나비’(Navi)와 ‘폴’(FFoL)이다. ‘나비’는 여행을 이끄는 ‘내비게이터’이자 공연을 이끌어가는 여자 주인공이다. ‘폴’은 빛의 숲을 찾는 청년(Find Forest of Light)이다. 처음엔 ‘풍각쟁이’로 묘사되지만 광주의 1930년대와 1980년대를 대표하는 두 인물 ‘정율성’(1914∼1976)과 ‘윤상원’(1950∼1980)을 대변하는 남자 주인공이다.
중국 혁명 음악의 대부로 추앙받고 있는 정율성은 1914년 양림동에서 태어났다.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항일 투쟁을 벌였다. 중국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연안송’ ‘팔로군 행진곡’ 등을 작곡했다. 1980년대를 대변하는 윤상원은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계엄군에 의해 희생된 인물이다.
여행의 시작점은 ‘광주종합버스터미널’. 버스는 해태 타이거즈의 홈경기장인 ‘무등경기장’과 기아 타이거즈의 홈경기장인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를 지난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광주천’을 따라가다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광주극장’과 광주학생독립운동발상지 ‘광주제일고’(현 광주일고)와 100년의 역사를 가진 호남의 대표시장인 양동시장을 거쳐 양림동 골목에 멈춘다.
1930년대의 양림동 골목을 걷는다. 첫 장소는 ‘양림살롱’ 여행자 라운지. 무대로 바뀐 살롱은 살롱에서 1930년대 풍의 음악소리가 흘러나오면 안내원 ‘나비’가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가수로 변신해 ‘폴’을 상대로 ‘오빠는 풍각쟁이야’를 부르고 공연을 이어간다. 이후 이장우 가옥과 광주 최초의 교회인 양림교회를 지나 오웬기념각에 이르는 곳곳마다 공연이 펼쳐진다.
양림동 펭귄마을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오월광장으로 향한다. 옛 전남도청건물과 군부의 헬기사격 총탄증거가 남아있는 ‘전일빌딩’, 시민의 시신을 임시 안치했던 ‘상무관’, 매일 5시 18분이면 ‘임을 위한 행진곡’이 차임벨소리로 흘러나오는 ‘시계탑’, 민주 인사들의 얼을 담아 세운 ‘민주의 종각’까지 곳곳에서 5월 정신을 일깨운다.
옛 전남도청 앞에서 ‘나비’는 ‘폴’과 재회하며 연민의 정을 전하려 하지만 ‘빛의 숲’을 찾아 나서는 ‘폴’의 발길을 잡지 못한다. 이때 광주가 낳은 천재가수 김정호의 ‘하얀나비’ 선율이 흐른다.
마지막 장소는 바로 옆 아시아문화전당. 건물의 설계 콘셉트가 ‘빛의 숲’이다. 아시아의 문화중심 도시로 발돋움하는 2030년대의 광주 모습이 그려진다.
▒ 여행메모
‘광주 100년 이야기 버스’ 금·토 3회 진행, 소고기 돼지고기 섞은 송정 떡갈비 ‘담백’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경부고속도로와 논산천안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한다. 동광주 나들목이나 문흥 나들목에서 가깝다. 용산역에서 광주 송정역까지 KTX가 수시로 오간다. 약 1시간50분 소요된다. 무등산 초입에 닿으려면 지하철로 이동한 뒤 버스 환승이 편리하다.
‘광주 100년 이야기 버스’는 송정역에서 출발해 광주종합버스터미널, 양림동(도보여행), 오월 광장 및 국립아시아문화전당(도보여행)을 거쳐 다시 광주종합버스터미널을 들른 뒤 광주송정역에서 여정을 마친다. 매주 금요일 야간 1회, 토요일 오전과 오후 각 1회 등 총 3회 진행된다. 요금은 1만원. 공식 누리집(www.gjcitytour.com)에서 사전에 예약하거나 현장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다.
광주여행에서 먹거리를 빼놓을 수 없다. 한 상 차려진 남도음식이 맛깔스럽다. 떡갈비, 한정식, 보리밥, 오리탕, 김치 등 ‘광주5미(五味)’가 입맛을 돋운다. 송정 떡갈비는 일반적인 떡갈비와 달리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섞어 만든다. 갈빗살에 양념을 재워 숙성시킨 뒤 숯불에 구워낸다. 달짝지근한 맛보다는 담백한 맛을 내는 게 포인트다. 송정동 일대가 떡갈비 골목으로 유명하다. KTX를 이용한다면 1913년에 형성돼 104년 전통을 자랑하는 광주송정역시장을 둘러보면 좋다.
광주=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