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 칼 세이건(1934∼1996)이 펴낸 첫 대중 과학서 ‘코스믹 커넥션’에는 이런 일화가 등장한다. 그는 출판 기획자와 미국 보스턴에 있는 폴리네시안 음식점에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포춘 쿠키에서 이런 글귀가 나왔다. “당신은 곧 중요한 메시지를 해독해 달라는 요청을 받을 겁니다.” 우연의 일치였던 것일까. 실제로 그는 코스믹 커넥션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후속작 ‘코스모스’가 천문학 분야의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면서 지구와 우주 공간을 잇는 다리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통해 지구를 더 사랑하게 됐다.
그런데 “중요한 메시지를 해독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사람이 비단 세이건만은 아닐 것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별처럼 빛나고 있는 수많은 과학자들은 우주의 질서를 가늠하기 위해, 혹은 그 질서를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지금도 고군분투하고 있으니까.
한국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 중 하나를 꼽으라면 김상욱(48)을 빼놓을 수 없다.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인 그는 요즘 TV 프로그램 ‘알쓸신잡 3’(tvN)에 출연하면서 대중에게도 친숙한 학자로 거듭났다. ‘떨림과 울림’은 그가 펴낸 아름답고 살뜰한 대중 과학서다.
“우주는 떨림이다”
제목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그는 왜 ‘떨림’과 ‘울림’이라는 단어를 내세웠을까. 이유는 이들 두 키워드로 우주의 메커니즘을 설명할 수 있어서다.
저자는 “우주는 떨림이다. 정지한 것들은 모두 떨고 있다”고 썼다. 문제는 이게 문학적인 수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당신 앞에 놓인 테이블도,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도 정중동의 움직임을 띠고 있다.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면 모든 것에서 미세한 진동을 느낄 수 있다.
진동이 기다랗게 이어지면 파동이 된다. 파동은 세상을 만든다. 전파나 소리는 모두 파동이다. 그렇다면 제목에 ‘울림’이라는 단어가 나란히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울림이다. 우리는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떨림에 울림으로 반응한다. …우리는 다른 이의 떨림에 울림으로 답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나의 울림이 또 다른 떨림이 되어 새로운 울림으로 보답받기를 원한다. 이렇게 인간은 울림이고 떨림이다.”
‘떨림과 울림’에는 이렇듯 근사하고 아름다운 문장이 간단없이 이어진다. 저자는 떨림과 울림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를 씨실과 날실처럼 활용해 거대한 우주의 질서를 그려낸다.
어렵게 여겨지는 내용이 적지 않지만 꾹 참고 정진한다면 누구나 지적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까다로운 내용도 문학적인 필치로 매끈하게 마름질해 선보이는 저자의 필력 덕분이다. 저자는 “물리학이 인간적으로 보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고, “인문학의 느낌으로 물리를 이야기해보려고 했다”고 적었는데 그 목표는 너끈히 달성한 것 같다. 과학자의 글이어서인지 어떤 질문이든 눙치고 넘어가는 게 없을 정도로 엄밀하고 구체적이다.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스케일이 장난이 아니다. 동서고금의 이름난 사상가들이나 거론했을 온갖 고담준론을 과학적으로 면밀히 뜯어본 내용이 차례로 등장한다. ‘시간은 무엇인가’ ‘공간은 몇 차원인가’ ‘죽음이란 뭔가’ ‘세상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이들 질문 가운데 죽음을 바라보는 물리학자의 시선은 보통 사람들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저자는 “원자를 알게 되면 세상 만물이 달라 보이기 시작한다”고 적었다. 눈에 띄는 모든 건 “원자의 모임”에 불과하니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다시 흩어지는 일일 뿐이다. “원자는 불멸하니까 인간의 탄생과 죽음은 원자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를 다룬 내용도 인상적이다. 세상이 왜 존재하는지 설명하려면 우주의 시작을 설명해야 한다. 물리학자들은 우주의 “시작점”이 있다고 여기는데 바로 빅뱅이다. 그런데 이건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꽝∼”하면서 우주가 탄생한 걸 의미하지 않는다. 빅뱅 이전엔 빈 공간 자체가 없었다. 빅뱅 이론이 설득력을 띠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우주가 꾸준히 팽창하고 있다는 관측 결과가 있어서다. 과거로부터 속속 답지하고 있는 빛의 경로를 추적하면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빅뱅이 일어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저자는 스티븐 호킹(1942∼2018)의 대표작 ‘시간의 역사’에 등장하는 문장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질문에 대한 이야기를 끝맺는다.
“우리가 (우주가 왜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의 답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인간 이성의 최종적인 승리가 될 것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신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세계
앨버트 아인슈타인(1879∼1955)이 남긴 명언을 떠올려보자.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이 말의 속뜻은 모든 것엔 정해진 원칙이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결정된 미래”는 존재하는가. 문제는 카오스 현상이다. 세상에는 예측하기 힘든 복잡한 운동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거머쥘 수 있는 답은 없는 것일까. 과학도 결국엔 불가지론의 학문인 건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에겐 수학이라는 무기가 있다. 과학은 “확률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주사위를 던졌을 때 ‘1’이 나온다면, 이런 숫자가 나온 이유를 해석할 순 없지만 ‘1’이 나올 가능성은 따져볼 수 있다. 간단한 가감승제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난제를 풀 수 있다.
“수학은 자연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기술한다. …물리학자는 외계인을 만나더라도 수학으로 소통이 가능할 거라 믿는다. 우주가 정말 수학으로 쓰인 것인지, 우리가 수학의 틀로만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수학이 없다면 물리도 없다.”
우주는 공식에 따라 움직인다. 하루는 24시간이다. 1년은 365일이다. 지구상에서 무언가를 떨어뜨리면 1초에 4.9m 낙하한다. 하지만 ‘24’ ‘365’ ‘4.9’라는 숫자가 등장하는 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다른 과학 법칙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인간은 과학의 이면에 무언가의 의미가 있을 거라고 넘겨짚는다. 인간이 이 세상에 등장한 것도, 공룡이 멸종한 것도, 사랑을 나누는 것에도 무언가의 의미가 깃들어 있을 거라고 여긴다.
저자는 “인간은 의미 없는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존재”라면서 이렇게 적었다. “의미라는 것이 상상의 산물에 불과할지라도 그렇게 사는 게 인간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게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상상의 체계 속에서 자신이 만든 행복이라는 상상을 누리며 의미 없는 우주를 행복하게 산다. 그래서 우주보다 인간이 더 경이롭다.” 이 책의 백미는 이렇듯 차갑지 않게 과학의 세계를 그려낸다는 데 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