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글로벌 실적 부진을 타개하고 미래 모빌리티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성장 가능성이 큰 동남아 공유경제 시장에서 신규 사업을 벌이고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거침없이 나서고 있다. 특히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이 같은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싱가포르에 기반을 둔 동남아시아 최대 차량 호출 서비스(카 헤일링) 기업 ‘그랩’에 2억5000만 달러(약 2840억원)를 투자하고 내년부터 순수 전기차 기반의 모빌리티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7일 밝혔다. 이를 위해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과 앤서니 탄 그랩 최고경영자(CEO)는 전날 싱가포르에서 만나 향후 협력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번에 투자하는 금액은 현대차 1억7500만 달러(약 1990억원), 기아차 7500만 달러(약 850억원)다. 앞서 지난 1월 현대차가 투자한 2500만 달러(약 284억원)를 합치면 현대·기아차가 그랩에 투자하는 금액은 총 2억7500만 달러(약 3120억원)에 달한다. 이는 현대·기아차가 외부 업체에 투자한 액수 중 역대 최대치다.
동남아 차량 공유경제 시장은 중국,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시장으로 평가된다. 동남아 주요 국가들이 과감한 친환경차 보급 확대 정책을 펼치면서 전기차 수요는 내년 2400여대에서 2025년에는 34만대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이에 현대·기아차는 동남아 공유경제 시장을 견인하고 있는 그랩의 비즈니스 플랫폼에 자사 전기차 모델을 활용하는 신규 모빌리티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3사는 우선 내년부터 싱가포르에서 그랩 운전자가 현대·기아차의 전기차를 활용해 차량 호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범 사업을 개시한다. 프로젝트 기간 동안 충전 인프라, 주행 거리, 운전자 및 탑승객 만족도 등을 면밀히 분석해 전기차 카헤일링 서비스의 확대 가능성과 사업성을 타진하고 향후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주요국에 전기차를 활용한 모빌리티 서비스를 확대한다는 청사진을 공개했다.
이번 신규 사업은 지난 1월 현대차가 첫 투자를 한 이후 그랩과 함께 전기차 부문 협력 방안을 지속적으로 논의하면서 성사됐다. 현대·기아차는 그랩과 함께 전기차 유지 및 보수, 금융 등의 특화된 서비스 개발과 모빌리티 서비스에 최적화된 전기차 모델 개발에도 나설 예정이다. 더불어 동남아시아 지역 전기차 보급을 늘리기 위해 충전 인프라 및 배터리 업체 등 파트너들과의 새로운 동맹 구축에도 적극 나서기로 했다.
현대·기아차는 이번 투자를 계기로 동남아 전기차 시장 선점 기회를 갖게 되는 동시에 해당 지역 판매 확대 및 지속적인 수익창출 기반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영조 현대·기아차 전략기술본부장 부사장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 지역 중 하나인 동남아시아는 전기자동차의 신흥 허브가 될 것”이라며 “그랩은 동남아 시장에 완벽한 전기차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최고의 협력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