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6년간의 전 직장생활이 악몽 같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거의 매일 사장에게 “개XX” “씨XXX”라는 욕을 들었다.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XX”라는 모욕적 언사도 참아야 했다.
폭언은 남들이 보는 앞에서도 서슴없이 이뤄졌다. 사장은 일을 못한다고 부서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병신 같은 XX”라고 소리치며 물건을 집어던졌다. 손날로 목을 치기도 했다. A씨는 퇴사 후에도 사장이 타던 차와 같은 차량을 보면 아직도 가슴이 쿵쾅거린다고 했다.
A씨가 다녔던 회사는 중소 IT업체다. ‘역대 최악의 갑질 폭행’ 논란의 당사자인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직장 내 갑질은 철없는 재벌 3세나 거대 기업 회장의 전유물만이 아니었던 셈이다.
노동법률사무소 ‘시선’의 김승현 노무사는 7일 “자수성가한 일부 중소기업은 회사가 자신의 소유라는 의식이 강하다”며 “견제 없는 갑질은 종종 대기업보다 더 심하다”고 말했다. 또 “최근에는 양 회장처럼 물리적 폭력을 가하지 않고 술 억지로 먹이기, 하루 종일 잔디밭에서 풀 뽑기, 창고에 책상 갖다놓고 업무보기 등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유형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직장갑질119’에 최근 접수된 B씨 사례도 비슷하다. 사회복지시설에서 일했던 그는 집안 사정으로 반차를 썼는데, 이튿날 사장은 B씨에게 “사적인 일로 공적인 업무가 늦어진 것에 대해 죄송하다고 사과하라”고 강요했다. B씨는 직원들 앞에서 “죄송하다”고 했지만 사장은 “집안일이 더 중요하면 사무실에서 나가라”고 소리 질렀다.
전문가들은 대기업에 비해 사회적 관심이 적고, 제왕적 사장을 견제할 사외이사나 옴부즈맨(감시기구) 등의 견제 시스템이 부족한 중소기업 직원들이 갑질 피해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또 노동조합이 거의 없어 직원들이 억울함을 호소할 곳 역시 없는 게 이들 기업의 현실이라고 했다. 직장갑질119의 최혜인 노무사는 “대기업은 인사팀, 사내고충인 등의 제도가 있지만 일부 중소기업은 이런 점이 부족하다”고 했다. 중소기업의 경우 갑질 사례가 알려져도 대기업만큼의 사회적 관심을 받기 어려워 생계가 급한 직원 스스로 침묵하는 경우도 잦다고 한다.
사장의 친인척, 지인이 직원들 가까이 있는 점도 무언의 압박이 된다. 최 노무사는 “사장이 직접 채용한 지인이나 가족들이 감시자 역할을 하면서 일종의 ‘사장 카르텔’이 생겨 권한 남용이 더 심해지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직원들은 월급을 받기 위해 노동력을 팔고 일을 하는 것인데 마치 노동력만 산 게 아니라 ‘사람’을 산 것처럼 생각하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에서 갑질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한국 사회의 잘못된 성공신화가 독단적 오너를 낳는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 교수는 “성공이 여러 사람의 노력 덕분이라 생각하기보다 오로지 본인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권위주의적인 오너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영면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도 “자수성가하기 위해 온갖 고생을 하면서 성공을 일궈내면 이에 대한 신념이 강해져 자신의 의사결정이나 판단에는 오류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고 했다.
김승현 노무사는 “괴롭힘의 주체를 처벌하기 모호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정확히 정의하고 처벌할 법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