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서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행위에는 관용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즘’을 힘주어 말하는 그의 말투에서 자부심이 묻어나왔다. 사무실 뒤편에 걸린 ‘고민하지 말고 연대하라(Don’t agonize, Organize)’는 문구가 담긴 플래카드가 덩달아 돋보였다. 지난달 26일 스톡홀름의 여성시민단체 ‘스웨덴여성로비(The Swedish Women’s Lobby)’에서 만난 클라라 베리룬드(사진) 사무총장은 ‘미투 운동’ 이후 한국의 페미니즘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페미니스트들은 좌절하지 말고 계속 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근 한국에서는 ‘급진적 페미니즘’이 부각되면서 페미니즘 자체에 대한 비하와 조롱이 끊이지 않고 있다. ‘꼴페미(꼴통 페미니스트)’ ‘뷔페미니즘(여성 페미니스트들이 유리한 것만 취하고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는 뜻)’ 등 표현이 공공연히 사용되는 게 현실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으로 무작정 미투 운동 의도를 의심하거나 비하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성중립 교육까지 도입하며 완전한 남녀 평등을 꿈꾸고 있는 스웨덴은 한국과 달랐다. 베리룬드는 “스웨덴에서 페미니즘은 사회적 합의”라며 “여성인권 향상에 반대하는 남성들은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에서도 올해 초 성폭력 파문이 있었지만, 피해 여성들을 의심하거나 비난하는 목소리는 없었다고 베리룬드는 설명했다. 실제로 시민단체의 스웨덴 남성 대상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79%가 미투 운동이 성 평등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과거에는 스웨덴에서도 지금의 한국처럼 페미니스트에 대한 비난이 있었다. 스웨덴에서 급진적 페미니즘의 바람이 불었던 1990년대 일부 남성은 “여성 페미니스트들은 대체로 뚱뚱하고 더럽다”고 비하했다. 페미니스트들을 동성애자로 몰기도 했다. 베리룬드는 “이는 페미니스트 목소리를 억누르려는 시도”라며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남성들의 방어논리이자 합리화”라고 설명했다.
일부 여성 페미니스트들의 남성혐오나 비혼(非婚), 비연애 선언, 탈코르셋 현상에 대해 베리룬드는 “성 차별을 받아왔던 여성들의 분노가 폭발한 결과”라며 “한국 사회가 이제 변해야 한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리룬드는 그러면서도 진정한 성 평등을 이루려면 분노하는 데에만 그쳐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제 정치적 행동이 필요할 때”라며 “여성들이 정부와 의회에 남녀 임금격차 해소와 가사노동 분담 등 실질적 조치를 여러 통로로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의원연맹(IPU)에 따르면 지난해 스웨덴의 여성 국회의원 비중은 43.6%로 193개국 중 1위다. 한국은 17%에 불과하다.
스톡홀름=조민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