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화재사고를 조사 중인 자동차안전연구원이 ‘EGR(배기가스 재순환장치) 내부의 냉각기 결함’ ‘알코올 성분을 포함한 냉각수’를 사고 원인으로 지목했다. 냉각기가 처음부터 내구성이 약하게 설계돼 인화성 있는 냉각수가 화재 사고의 직접 원인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추가 시험에 들어갔다. 또 BMW 측이 냉각기 결함이 생길 정도로 EGR 시스템이 과도하게 작동토록 소프트웨어를 설정했는지 조사중이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EGR 냉각기 내구도나 소프트웨어 설정을 원인으로 꼽기는 처음이다. BMW 측은 그동안 ‘냉각기 결함’이 화재 원인 중 하나라고만 설명했을 뿐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밝히지 않았다. 냉각기 내구성이 주행 환경을 견디기에 약하다고 확인되면 추가 리콜 또는 리콜 방식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 국토교통부는 강제리콜 명령까지 내릴 수 있다.
자동차안전연구원의 핵심 관계자는 8일 “EGR 냉각기에서 크랙(틈)이 발생한 것은 냉각기 자체 내구성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화재의 근본 원인으로 볼 수 있다”며 “BMW 차량의 냉각기가 고온 배기가스를 얼마나 견딜 수 있고, 어떤 환경에서 크랙이 발생하는지 시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일반적으로 냉각수에는 인화점이 낮은 알코올 성분(에틸렌글리콜)이 포함된다. 그런데 시험을 통해 BMW 차량의 냉각수에 불이 붙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차량 화재가 냉각수 자체에 불이 붙어 발생한 것인지 추가 시험으로 분석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자동차안전연구원은 국토부 산하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연구기관이다. BMW 화재조사 민관합동조사단에서 화재 원인 시험 및 분석을 맡고 있다. 자동차안전연구원은 추가 시험으로 냉각기의 적정 내구도, BMW 차량 소프트웨어 설정의 적절성, 냉각수 자체의 인화 가능성을 분석한 뒤 다음 달 중순쯤 최종 결과를 발표할 방침이다.
배기가스의 온도를 낮춰주는 역할을 하는 냉각기는 EGR 모듈의 핵심 부품이다. 냉각수는 냉각기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하는 부동액이다. 30∼50%는 에틸렌글리콜, 나머지는 물로 구성된다.
냉각기가 처음부터 내구성이 약하게 설계됐다면 주행 과정에서 고온의 배기가스에 충격을 지속적으로 받아 크랙이 쉽게 발생한다. 이 틈으로 인화성 물질을 함유한 냉각수가 새어나오고, 고온의 배기가스와 만나 냉각수에 불이 붙는다는 것이다. 냉각수에 직접 불이 붙지 않더라도 냉각수의 알코올 성분이 EGR 내부에 침전물이 쌓이는 것을 가속화할 수 있다. 수분이 날아가 끈적해진 냉각수가 매연물질을 뭉치게 해 일종의 ‘기름덩어리’를 만들고, 이 덩어리가 고온의 배기가스를 만나 불이 나는 식이다. 작은 불티라도 지속해서 발생하면 흡기관에 구멍을 내 차량 전체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
냉각기 결함 혹은 크랙을 발생시킨 원인이 증명되면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BMW 측이 공개한 화재 원인과 다를 뿐 아니라 부품의 자체 결함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는 국토부가 강제리콜을 명령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동안 BMW 측은 “EGR 냉각기의 누수로 쌓인 침전물이 바이패스 밸브 등의 오작동으로 고온 배기가스와 만나 화재가 났다”고 막연하게 설명해 왔다. BMW는 7월 말부터 약 17만2080대를 대상으로 EGR 모듈을 교체하는 자발적 리콜을 하고 있다.
자동차안전연구원 관계자는 “리콜로 교체된 냉각기 내구성도 약하다고 판단되면 리콜 방식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며 “문제점이 확인되는 대로 리콜 방법 변경 및 확대 등을 국토부에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