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512잔…영화시장 콧대 꺾은 커피

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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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여행하다보면 커피 한잔 마시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일이기 십상이다.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서도 커피는 가장 대중적인 음료는 아니다. 일본 베트남 같은 국가에선 커피가 인기음료지만, 우리나라처럼 길거리 한 블록에서 두어 개의 커피전문점을 만날 정도는 아니다.

11조7397억원. 지난해 관세청이 집계한 국내 커피시장 규모다. 국내 게임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영화 시장(5조4888억원)의 2배가 넘는 규모다.

커피전문점 역시 2010년대 들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11년 1만2381개이던 것이 지난해는 8만5000여개로 4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 한 해 동안 한국인이 국내에서 마신 커피는 1인당 512잔. 대한민국이 ‘커피 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현실이다.

한자문화권인 중국 일본을 제치고 유독 우리나라에서 커피가 이처럼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한국인만의 독특한 생활방식을 꼽는다. 바로 ‘빨리빨리’ 문화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노동시간이 긴 만큼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는 한국인들에게 커피만큼 적절한 긴장과 활력, 즐거움을 주는 음료가 없다는 것이다. 커피의 주성분인 카페인이 인체에 일으키는 효과 말이다.

‘힘’을 주는 커피, 효능과 부작용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북동쪽 끝단에 위치한 에티오피아가 원산지라는 게 정설이다. 건조하고 햇빛이 강한 사바나성 기후대에서 자라는 이 열매가 어떻게 인간의 음료가 됐는지 정확한 기록이나 증거는 없다. 유력한 설이 에티오피아의 목동 칼디 기원설이다. 기원전 3세기 염소를 치던 칼디는 어느 날 얌전하던 염소들이 붉은 열매를 뜯어먹고 밤새 흥분한 걸 목격했다. 그는 근처의 무당에게 사실을 알렸고 이 무당이 붉은 열매가 정신을 맑게 하고 피로를 덜어준다는 것을 알고 졸음을 쫓기 위해 먹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처럼 음료 형태가 아니라 콩 열매를 빻아 빵에 발라 먹었다는 것이다. 영어 ‘커피’의 어원 역시 에티오피아어의 ‘카파(caffa)’로, 이 단어는 힘을 뜻하는 말이었다.

자양강장 약초로 여겨 음식과 함께 복용됐던 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예멘을 거쳐 중동지역에 널리 퍼졌다. 쓴맛을 덜어내기 위해 다양한 복용 방법이 고안됐고 그중 가장 좋은 방법이 커피체리의 과육은 버리고 씨만 꺼내 볶은 뒤 갈아서 뜨거운 물에 내려 마시는 것이었다고 한다.

중동에서 같은 이슬람권인 터키를 거쳐 유럽에 전파된 커피는 중세시대만 해도 천대받았다. ‘무슬림 이교도의 음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16세기 교황 클레멘스 8세가 “이렇게 좋은 걸 이슬람교도만 마시게 놔둘 순 없다”며 커피에 세례를 주는 해프닝을 벌인 뒤 프랑스 영국 등 전 유럽으로 퍼졌다. 국내에 들어온 건 중국을 거쳐 기독교가 국내로 유입되던 19세기 말이었다. 중국의 차(茶)가 유럽으로 퍼졌던 경로의 반대인 셈이다.

커피의 효능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만 해도 꽤 많다. 대부분 자연 카페인 성분이 야기하는 효과들이다. 카페인은 자연으로부터 식물 해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항산화 성분이다. 커피가 주로 남위 25도∼북위 25도 사이의 커피벨트에서 자라는 데에서 기인한다. 열대·아열대인 이 지역의 식물들은 커피의 카페인처럼 자기보호 항산화물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첫 번째 효능은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두통과 잠을 쫓아내는 것이다. 섭취된 카페인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세로토닌 노르아드레날린 등을 증가시킨다. 이 호르몬들이 많아지면 혈액순환이 잘 되고 밤새 잠을 잤던 우리 근육들의 활력이 증가한다. 반대로 졸음을 유도하는 호르몬은 억제한다고 한다. 두 번째는 노화방지 효과다. 카페인의 항산화 작용으로 우리 몸 안의 활성산소를 제거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심장질환을 줄이고, 신경전달물질 이상으로 야기되는 질병인 파킨슨병의 증상을 완화하며 각종 뇌질환도 억제한다.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활력 호르몬’ 도파민이 많이 나오니 당연히 우울증 등의 예방에도 좋다고 한다.

▒ 하루 2~3잔의 여유 ‘기분 업’ 우울증 예방약

반면 이런 효능이 곧바로 부작용이 되기도 한다. 과다한 도파민 분비는 중독성을 일으킨다.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도파민은 중독물질에 의해 더 많이 분비된다고 한다. 담배의 니코틴이 대표적이다. 도파민 분비 과다가 상시화되면 되레 우울증을 앓게 될 수도 있다. 지나치게 커피를 많이 마시면 수면장애도 온다.

맛있게 커피 마시는 법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안하는 안전하게 카페인 섭취하기 방법은 하루 300㎎ 이하다. 원두커피 한 잔에는 115∼175㎎의 카페인이 들어 있다고 한다. 따라서 다른 음식 등을 통해 카페인을 섭취하는 걸 고려하면 커피는 하루 2∼3잔이 적당하다는 게 의사들의 조언이다. 설탕과 우유, 프림 같은 첨가물은 조심해야 한다. 체중과다인 사람은 설탕뿐 아니라 우유도 피하는 게 좋다. 칼로리가 많기 때문이다. 프림 같은 크림 성분은 인공 화학성분이 있을 수 있다.

커피전문점에 들어서면 각종 원두와 원산지, 로스팅 방법 등이 적힌 메뉴판이 있다. 커피 원두는 원산지뿐 아니라 어떻게 볶느냐(로스팅·Roasting)에 따라 맛이 크게 달라진다.

원두를 말리는 방법에서도 맛이 달라진다. 커피체리에서 추출한 원두를 햇빛에 그대로 검은색을 띨 때까지 말리는 건식법, 물에 원두를 헹궈 불순물을 제거한 뒤 실내에서 말리는 습식법이 있다. 건식법은 불순물이 남아 있지만 이 성분이 다양한 풍미와 향기를 띠게 해서 원두의 맛을 좋아지게 하고, 습식법은 불순물이 없어 커피 원두의 순수한 향을 맛볼 수 있지만 볼륨감이 떨어질 수 있다.

로스팅에 따라서는 커피의 신맛과 쓴맛이 달라질 수 있다. 덜 볶을수록 신맛이 강해지고 구수한 맛이 얇아질 수 있다. 많이 볶으면 원두가 가진 다양한 향과 맛이 살아나지만 지나치면 탄맛이 나 원두의 모든 맛을 앗아갈 수 있다. 로스팅 정도가 심할수록 에스프레소로 마시는 게 좋다. 강력한 압착과 뜨거운 증기로 탄맛을 걸러내고 원두의 고유 풍미만 걸러내는 방법이다.

원산지별로는 크게 아라비아카와 자바(로부스타) 커피로 나뉜다. 아라비아카는 에티오피아의 커피나무에서 추출한 원두로 기후조건이 비슷한 콜롬비아 브라질 에콰도르 온두라스 자메이카 등 중남미산이 주를 이룬다. 자바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인도로 들어와 현지 기후에 맞춰 일부 바뀐 커피나무에서 추출된 커피원두다. 다소 습한 열대지방인 인도 베트남 하와이 등지에서 추출된 원두다. 세계 3대 원두는 에티오피아 고산지대에서 건식법으로 추출되는 하라커피, 자메이카 고산지대에서 재배되는 블루마운틴, 하와이에서 자라는 코나커피다.

원두커피는 커피전문점에서 간단하게 사서 마시는 경우가 많지만, 집에서 직접 내려 마시는 방법도 좋다. 입맛에 맞는 커피 원두를 골라 구입한 뒤 알맞은 방법으로 내리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마니아도 많다.

값비싼 에스프레소머신을 사는 대신 큰돈 들이지 않고 거름종이에 커피를 넣어 뜨거운 물을 부어서 내리는 핸드드립법이 바리스타들이 권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핸드드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천천히, 그리고 가장 적당한 물의 온도를 유지하느냐다. 뜨거운 열에 의해 볶인 원두는 로스팅 과정에서 불순물 가스를 함유하게 된다. 핸드드립에서는 원두가루에 물을 약간 부어 이 가스를 빼는 게 중요하다. 거름종이에 닿지 않도록 원두에 직접 물을 부어 30초 동안 가스가 빠져나가도록 기다린 다음 2분30초 안에 시계방향으로 다시 물을 천천히 부어 커피를 내리는 게 좋다. 물의 온도가 낮으면 신맛이 많아지고, 온도가 높으면 쓴맛이 강해진다. 90∼95도 사이 온도에서 커피를 내리는 게 좋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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