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한국인 피해자의 명칭을 ‘옛 조선반도(한반도) 출신 노동자’로 일원화하기로 했다. 그동안 사용했던 ‘징용공(徵用工)’에 강제성의 의미가 담겼던 만큼 이번 명칭 변경은 강제동원 사실을 부정하고 감추기 위한 것이다.
NHK 등 일본 언론은 11일 일본 기업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과 관련, 강제징용 피해자 명칭을 ‘옛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로 단일화하기로 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국회 답변이나 고위관리 기자회견 등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주로 ‘징용공’ ‘민간 징용자’ 등으로 표현해 왔다.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는 자발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일본 정부의 기존 입장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이번 명칭 변경은 지난 1일 아베 신조 총리의 국회 답변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당시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말했다.
고노 다로(사진) 외무상도 지난 9일 “이번 (한국 대법원 판결) 원고는 징용된 분들이 아니다. 모집에 응한 분”이라고 주장했다. 고노 외무상은 ‘징용’ 표현을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해 “현실이 그렇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일본 정부의 방침은 일제 강점기 위안부 강제 모집의 불법성을 부인하는 등 ‘과거사 부인’ 행보와 궤를 같이한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는 할당 모집, 관 알선, 국민징용 등 3가지 방식으로 한반도에서 노동자를 강제 동원했다. 할당 모집이나 관 알선 모두 형식만 모집·알선이었을 뿐 모집 인원과 지역은 조선총독부의 결정으로 이뤄졌고, 모집인원을 채우기 위해 강압적인 방법이 동원됐다는 점에서 징용과 차이가 없었다.
일본에서는 극우세력의 반한 감정도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극우언론 산케이신문은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내린 대법원의 수장인 김명수 대법원장을 대표적인 친북 좌파 인사라고 비난했다. 지난 10일 도쿄에서는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에 항의하는 극우세력의 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일장기와 욱일기를 들고 도쿄역과 긴자 등을 행진하며 “한국과 단교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한편 한국 정부는 징용의 강제성을 부인하는 일본 정부의 시도에 대해 유감을 전달하고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는 태도는 적절치 못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제 강점기라는 상황에서 자신의 의사에 반해 강제적으로 노역에 종사한 점은 역사적 사실로서 부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한·일 양국이 미래지향적 관계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일본 정치 지도자들이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7일 배포한 ‘강제징용 판결에 관한 일본 정부의 태도에 대하여’라는 글을 통해 “강제징용자들에 대한 한국 대법원 판결을 놓고 일본 정부 지도자들이 과격한 발언을 계속하는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그런 발언은 타당하지도 않고, 현명하지도 못하다”고 비판했다.
장지영 이상헌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