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든 남녀 임금격차를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남녀 임금격차 해소 방법론과 보다 본질적인 남녀 임금격차는 과연 완전히 해소될 수 있는지 여부는 항상 의문으로 남는다.
영국 중부 코번트리에서 지난달 30일 만난 ‘위민스 버짓그룹(Women’s Budget Group)’의 공동대표 메리 앤 스티븐슨(사진)은 “진정한 남녀 간 경제적 평등을 위해선 가사노동을 분담하고, 가사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매기는 페미니즘 경제(feminism economy)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위민스 버짓그룹은 교수와 박사, 정책전문가, 활동가가 네트워크를 형성해 남녀 간 경제적 평등을 위한 연구를 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영국의 비영리기구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무급 가사노동은 언제나 여성의 몫이었다고 스티븐슨은 설명했다. 가부장적 문화가 견고했던 한국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실제로 한국 남성의 가사분담률은 2014년 기준 16.5%에 불과하다. 가사노동 100시간 중 남성은 16시간30분만 담당한다는 의미다. 이 수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3.6%)의 절반 수준이며 우리나라보다 성평등 지수가 낮은 일본(17.1%)에도 못 미친다.
결국 맞벌이 부부라 해도 가사노동을 도맡는 여성은 임금노동에 투입하는 시간이 남성보다 부족할 수밖에 없다. 스티븐슨은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여성들은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 등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용주가 여직원이 결혼하면 회사를 그만둘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채용을 꺼린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미혼 여성에게 돌아간다”고 했다.
위민스 버짓그룹과 스티븐슨은 페미니즘 경제를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남녀가 가사노동을 절반씩 부담하는 것은 물론 그동안 평가절하 됐던 가사노동의 가치를 재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티븐슨은 “육아휴직 등 성평등 제도를 활성화시켜 가사분담률을 높여야 한다”며 “동시에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매겨 여성들이 일한 만큼 대접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티븐슨은 개인의 의식 변화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임금 노동만이 경제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주류 경제학의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무급 가사노동도 충분히 생산적이고 많은 능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육아는 국가경제를 이끌어갈 미래의 생산가능인구를 키워내는 노동으로 해석될 수 있다. 치매에 걸린 노인을 돌보는 일에도 높은 수준의 공감 능력과 이해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주류 경제학은 이러한 노동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게 현실이다. 스티븐슨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돌봄, 가사노동의 가치는 쉽게 절하되기 쉽다”며 “오히려 이런 노동이 경제를 뒷받침하는 근본적 노동(fundamental labor)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번트리=글·사진 조민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