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중(57) 재경고창군민회 회장은 실향민이다. 그의 고향은 전북 고창군 아산면 용계리 용계마을. 1984년 운곡저수지가 들어서면서 마을이 통째로 수몰돼 어릴 적 김씨가 뛰놀던 고향이 사라졌다. 밟을 수 없는 고향땅을 뒤로하고 김씨는 서울의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이후 가정을 꾸리고 서울에서 자리 잡았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고향인 용계마을이 떠올랐다. 그는 재경고창군 향우회를 통해 고향을 위한 활동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김씨처럼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사는 재경고창군민회 향우회원들은 고향에 도움이 되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그들이 떠올린 아이디어는 바로 ‘고향특산품 공동구매하기 운동’이었다. 지역에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 동시에 고향 특산품을 알리자는 취지였다.
회원들은 자비를 들여 공동구매 전산시스템을 개발해 즉시 특산품을 주문할 수 있는 SNS 계정을 만들었다. 상품 주문과 조회, 배송확인 기능만을 넣어 손쉽게 특산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우수한 품종이지만 홍보가 부족해 잘 팔리지 않던 고창 황토멜론은 지난 8월부터 한 달 간 재경고창군민회를 통해 무려 1만 박스(약 2억9000만원 상당)가 팔려나갔다. 이번 달에는 김장철을 맞아 절임배추를 판매하고 있다. 김씨는 “내가 살았던 마을은 사라졌지만 늘 고향을 마음속에 품고 산다”며 “고향을 떠나 온 회원들의 작은 마음이 고향에 보탬이 돼 기쁘다”고 말했다.
이처럼 고향을 매개로 농어촌 지역에 온기를 불어넣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고향을 떠나 온 사람들이 뜻을 모아 ‘고향희망심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행정안전부는 2016년부터 고향방문 프로그램이나 출향 인사 초청, 봉사 프로그램 등을 지원하는 ‘고향희망심기’ 사업을 벌이고 있다.
행안부 고향희망심기 사업은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을 살리기 위한 작업이기도 하다. 지난해 한국고용정보원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30년 내에 전국 226개 기초지자체 중 35%인 79개 시·군이, 3482개 읍·면·동 중 40%인 1383개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됐다. 젊은 층이 대도시로 떠나고, 저출산과 고령화가 지속되면서 ‘지방 소멸’의 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행안부는 10개 중점추진 지자체를 선정해 지자체와 출향민을 중심으로 시범사업을 벌인 뒤 민간주도의 지역 활성화 사업으로 만든다는 목표다.
경남 산청군은 출향인을 중심으로 ‘향토장학회’를 설립해 장학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산청군청과 함께 양파나 감 수확기를 맞아 부족한 일손을 돕기 위해 봉사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지자체 도움 없이 직접 행사를 기획한 곳도 있다. 재외(서울·인천·성남·안산)남원향우회는 고향인 전북 남원에서 매년 5월 열리는 ‘남원춘향제’를 홍보하기 위해 같은 달 ‘재경남원향우회장기 민속씨름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에는 남원향우회원 212명을 비롯한 50개팀 400여명이 참가해 춘향제 분위기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조봉업 행안부 지역발전정책관은 “활력을 잃어가는 지역을 살리기 위해 고향을 매개로 방문봉사와 기부활동을 활성화하는 ‘고향희망심기’ 사업을 추진 중”이라며 “앞으로도 지자체와 협력해 고향희망심기가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