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 국일고시원 화재 참사로 고시원의 실상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애초 고시나 수험 및 취업을 준비하던 학생들의 거소로 활용됐지만 최근에는 상당부분 극빈층의 주거지로 변모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경제위기를 겪으며 빈민층으로 전락한 중·장년층과 경제력이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고시원으로 대거 흡수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대판 판자촌’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정부의 주거복지 정책이 이들을 끌어안지 못하면서 민간영역인 고시원 업주가 증가했고, 결국 주거 피라미드의 최하층민을 양산했다는 비판이다. 정부의 안전대책 역시 고시원 급증 이후 뒤늦게 마련돼 현재로선 고시원 거주자를 재난 사각지대에서 구출하기도 요원하다.
지난 6월 도시연구소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국토교통부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고시원·고시텔에 거주하는 가구 수는 15만1553가구다. 평균 월세는 32만8000원, 가구의 평균 소득은 약 180만원으로 국내 전체가구 평균소득(371만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거주자 중 고졸 이하 학력 비중은 32.4%다.
전문가들은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연달아 겪은 2000년대 빈곤주거지로 밀려난 이들이 고시원에 사는 주요 계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시기 경제적 파산을 겪으며 갈 곳을 잃은 도심 청년층이 그대로 나이 들었다는 설명이다. 소방청에 따르면 2004년 전국 고시원 수는 3910곳에서 2008년 6126곳으로 늘었고, 2012년 1만1232곳에 이어 지난해 말에는 1만1892곳까지 증가했다. 13년 만에 3배가 늘어난 수치로 2000년대에 크게 증가했다. 실당 10㎡ 면적을 적용하면 36만3000실을 넘는다. 이 중 80%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
최은영 도시연구소 소장은 “(외환위기) 당시의 가난한 청년이 지금의 가난한 중·장년이 됐다”면서 “고시원의 폭증 시기는 지났지만 지금도 꾸준히 늘어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개발위주의 도시정책도 ‘고시원 빈민’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빈민촌이 고가의 주택가나 상업지구로 탈바꿈하면서 중산층 이상의 가구가 유입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발생했고, 생계형 일자리를 찾는 빈민층이 늘다보니 저렴한 고시원 수요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막노동 등 단순노무직에 종사하는 고시원 빈민은 일자리가 없는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가기도 어렵다. 이번 화재가 발생한 지역 역시 과거 판자촌이 있던 지역이다. 최 소장은 “서울에 개발이 이어지면서 단독주택이 사라지고 이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 공간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고시원이 빈민층을 타깃으로 하는 수익사업으로 운영되다보니 주거환경은 열악할 수밖에 없었다. 전문가들은 고시원의 경우 통상 공실률이 20% 아래면 연간 수익률 30%가 보장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도심의 건물주나 고시원 업주들은 주로 오래된 건물을 뜯어 고쳐 고시원으로 활용했다. LH토지주택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이전 지어진 고시원 건물은 42.5%에 이르고 1990년 이전 지어져 30년이 넘은 고시원 건물도 5곳 중 1곳(20.8%) 꼴이다.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등 안전관련 최소 기준 규정이 마련된 건 2009년 7월이다.
고시원 대부분은 소유와 운영이 분리돼 리모델링의 한계도 있다. 화재가 발생한 국일고시원 건물도 한국백신 하창화(78) 회장 형제가 소유하고 있고 고시원 운영은 다른 사람이 맡고 있다.
고시원은 건물주가 사업자등록 시 종목을 ‘고시원’으로 적어 올려야 하지만 불법도 빈번하다. 주택이나 독서실 등을 몰래 고시원으로 개조해 법망을 피해가는 경우다. 법의 테두리를 아예 벗어나 있는 만큼 잠재적 사고 위험도 크다. 학계에서는 이처럼 주택 등을 불법 개조한 고시원에 사는 가구가 통계상 파악된 고시원 거주 가구 규모만큼 많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왔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대도시 임대료가 오르고 소득이 양극화 되면 소득이 불안정하고 주거지가 없는 계층이 피해를 본다. 이번 사건으로 국내 주거복지정책의 허점이 드러났다”며 “주거급여 대상자를 늘리고 도심과 가까운 매입임대주택을 늘렸듯이 정부가 정책적 보완을 계속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