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에 경고음이 울리면서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도입 여파로 어려움을 겪었던 기업들이 중국 내수 침체라는 ‘퍼펙트 스톰’(여러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겹쳐지는 초대형 경제위기)의 영향을 받고 있다.
중국 진출 기업들은 내수 경기가 침체기에 들어서면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 우선 정책을 펼칠 것을 우려한다. 중국 경기 침체 충격이 고스란히 한국 기업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가 중국과 협력 강화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2일 코트라(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와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중국 현지에 진출했거나 중국에 수출하는 한국 기업은 약 4만개다. 중국 경기 둔화 조짐이 보이지만 지금까지는 크게 체감하진 않는 수준이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중국의 경제 하락세가 도래하고 내수 침체기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가나무역 곽기찬 대표는 “현지 진출 기업인들은 중국의 내수 경기 침체를 가장 큰 위기 요인으로 꼽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침체기가 곧 찾아온다고 보고 각자 대비책을 고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내수 침체는 한국 기업들의 매출 감소로 이어진다. 한국은행의 최근 통화신용정책 보고서를 보면 미국과 중국 간 교역이 위축되면 양국의 중간재 수요 감소로 한국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친다. 한국 전체 수출액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24.8%)이 큰 데다 대(對)중 수출의 78.9%가 중간재이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중 무역전쟁이 지속될 경우 아시아의 평균 성장률이 2년간 최대 0.9% 포인트까지 떨어질 수 있고,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이 1% 포인트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위협을 느끼는 대표적인 업종이 자동차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 3분기까지 현대자동차의 누적 수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50%나 감소했다. 중국 진출 기업 관계자는 “현대차가 중국 택시 시장에 제품을 공급하면서 저가 브랜드로 인식돼 있다”면서 “택시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성장의 한계에 봉착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라고 귀띔했다.
본격적인 경기 하락세에 접어들면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 우선 정책을 펼쳐 상황은 더 악화될 수 있다. 코트라 관계자는 “현재는 중국 정부가 해외 기업에 대한 지원책을 내놓는 등 기업 활성화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내수 경기가 침체하면 사드 도입 때와 마찬가지로 해외 기업 유통망을 쥐고 흔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한국 기업들이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을 버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중국 현지 시장에 개척해놓은 판로를 버리고 기업이 떠날 수는 없다”며 “베트남 등 다른 국가로 이동하는 것은 세계 최대 시장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 정부에 ‘페널티’를 받을까 어려움을 내색하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 불만을 내비쳤던 사드 논란 당시 중국 공기업을 상대로 영업을 거의 하지 못했던 뼈아픈 경험이 있어서다.
기업들은 개별 기업 차원의 대응은 한계가 있어 한국 정부가 중국과의 협력 강화에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호소한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경제사절단 형식으로 협상 창구를 마련해 중국 경기 침체에도 한국 기업들이 원활하게 영업을 할 수 있도록 대응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