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집권에 성공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일방주의, 고립주의, 보호무역을 주창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다자주의와 자유무역, 개방을 중시하는 세계 흐름에 역행하면서 계속 외톨이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1일(현지시간) 세계 각국 정상 70여명이 참석한 파리 평화포럼에선 이런 현상이 재확인됐다. 평화포럼은 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식에 이어 열렸다.
평화포럼에 참석한 정상들은 편협한 고립주의를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1차대전은 고립주의가 얼마나 파괴적인지 보여줬다. 편협한 민족주의가 다시 힘을 얻는 것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안토니우 구테레쉬 유엔 사무총장은 “오늘날 세계는 20세기 초 1930년대와 닮았다. 예측할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우려된다”고 했다. 모두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말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야심차게 준비한 평화포럼에 참석한 대부분의 정상들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이 불참해 이에 대한 반박도 하지 못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사회로부터 외면을 받아 아메리카 퍼스트가 아니라 ‘아메리카 얼론(America Alone·나홀로 미국)’ 상황에 처했다고 표현했다.
미국의 고립은 계속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전통 우방국에도 통상과 안보 부담을 가중시킨 게 그 주요 원인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함께 참여한 유럽연합(EU) 회원국들도 표적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유럽 국가들의 방위비 분담을 크게 늘릴 것을 요구해 유럽 정상들의 반발을 샀다.
지난 6월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문제로 나머지 6개국 정상들과 이견을 보이다 회의 전에 먼저 자리를 떴다. 이후 그는 트위터 글을 통해 다른 나라 정상을 비판하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백악관 수석고문이었던 데이비드 엑설로드는 “프랑스에서 진행된 행사를 보면서 미국이 이토록 고립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미국 우선주의가 아니라 나홀로 미국인 것처럼 느껴졌다”고 트위터에 썼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결과적으로 고립을 자초한 게 아니라 스스로 고립주의 정치세력의 지도자가 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브루스 젠틀슨 듀크대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유럽의 국가주의 정치인들은 모두 트럼프 대통령을 선례로 삼아 가짜뉴스나 자국 우선이라는 구호를 채택했다”고 지적했다.
유럽 국가들의 가장 강력한 우방국인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길을 걷는 사이 그 틈새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파고든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마크롱 대통령이 얼마 전 제안한 유럽 독자군 창설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두둔했다. 유럽 독자군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즉각 “모욕적”이라고 한 것과는 너무나 상반되는 장면이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