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파 “트럼프, 김에게 놀아나” 2차 북·미 정상회담 등 반대… 대북 리스트 압박 거세질 듯
“단거리용까지 없애라는 건 무장해제 하란 얘기” 반박도

미국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12일(현지시간) 북한 미사일 기지 최소 13곳을 확인했다는 보고서를 공개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된 모양새다. 북한 핵·미사일 리스트 제출을 요구하는 미국 내 대북 강경파의 목소리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CSIS는 북한의 미신고(undeclared) 미사일 기지 약 20곳을 확인했다면서 현재 운용(active) 중으로 보이는 황해북도 황주군 삿갓몰 일대 미사일 기지를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뉴욕타임스는 “위성사진은 북한이 대단한 속임수(great deception)를 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는 비핵화 조치에 대한 반대급부를 촉구했던 북한에 핵·미사일 리스트를 먼저 제출하라는 요구로 해석된다. 영변 핵시설 폐기 등 북한의 비핵화 조치 약속은 더 이상 협상카드로 작용하기 어려워졌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 국무부는 CSIS 보고서 내용에 대해 지난 6월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 약속은 완전한 비핵화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의 제거를 모두 포함한다고 밝혔다. 일본을 방문 중인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13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할 때까지 제재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미 대화를 회의적으로 보는 미국 조야의 불만이 표출됐다는 해석도 있다. CSIS 보고서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전략을 둘러싼 불안감을 촉발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얘기다. 민주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전략에 급브레이크를 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 상원 외교위원회 동아태소위 민주당 간사인 에드워드 마키 의원은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 의해 놀아나고 있다”며 2차 북·미 정상회담뿐 아니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고위급 회담까지 반대했다. 이런 가운데 미 정부는 유예된 대규모 한·미 연합 군사훈련과 관련, “북한 비핵화에 진전이 없으면 내년 봄 재개될 수 있다”는 뜻을 일본 정부에 전달했다고 도쿄신문이 보도했다.

청와대는 CSIS 보고서에 대해 “한·미 정보 당국이 이미 파악하고 있던 내용”이라며 북·미 대화의 필요성을 더욱 강조했다. 김의겸 대변인은 ‘삿갓몰 미사일 기지=단거리미사일용’이라는 논리를 펴며 “북한이 이 미사일 기지를 폐기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 기지를 폐기하는 게 의무조항인 어떤 협정도 맺은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에 단거리미사일까지 다 없애라고 하는 건 무장해제를 하라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을 사거리에 둔 단거리미사일 기지가 협상 대상일 수 없다는 김 대변인의 말은 논란을 낳고 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모든 미사일은 비핵화 협상 대상”이라며 “정부는 북한의 입장을 대변할 게 아니라 ‘단거리미사일을 제거하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최승욱 기자,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