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낮 12시30분 스타벅스 서울 여의도역점은 점심식사를 마친 직장인들로 북적였다. 커피를 주문하려고 20여명이 길게 줄을 섰다. 계산대 아래에는 ‘현금 없는 매장입니다. 신용카드나 스타벅스카드 등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손님들은 저마다 플라스틱 신용카드나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주문부터 결제까지 끝내는 ‘사이렌 오더’로 음료를 받아가는 손님도 눈에 띄었다. 스타벅스커피 코리아는 지난달 22일부터 ‘현금 없는 매장’을 403곳으로 늘렸다. 전국 매장 1200여곳 가운데 3분의 1 정도가 현금을 받지 않는 셈이다.
같은 날 오전 서울 경동시장도 고춧가루, 새우젓 등 김장재료를 사려는 발길로 분주했다. 다만 풍경은 조금 달랐다. 이른바 ‘○○페이’로 불리는 모바일 결제나 신용카드를 쓰는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젓갈을 파는 상인 차모(58)씨는 “카드 결제 손님은 10명 중 1명꼴”이라며 “대부분 현찰만 쓴다”고 했다. 차씨는 “얼마 전 젊은 손님이 휴대전화로 결제한다고 해서 아예 카드단말기를 내밀고 ‘손님이 직접 (결제) 해 달라’고 말한 적도 있다. 그런 게 있다는 건 아는데 할 줄 모른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하는 모바일 결제가 빠르게 퍼지면서 ‘현금 없는 사회’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미국 중국은 물론 현금 이용률이 높은 일본도 ‘캐시리스(Cashless)’를 외치고 나섰다.
하지만 고령층은 여전히 현금을 선호한다. 한국은행이 전국 19세 이상 남녀 2511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설문조사한 결과 60대 이상 연령대에서 현금 선호율(51.6%)이 가장 높았다. 70대 이상의 현금 선호율은 76.9%에 달했다. 모바일 결제 수단이 점점 다양해지는 만큼 세대별 결제 방식에서 ‘양극화 현상’도 나타나는 것이다.
간편결제 서비스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간편결제 서비스 이용 건수는 2016년 4분기 126만건에서 지난해 4분기 266만건으로 배 이상 늘었다. 간편결제는 스마트폰 등에 신용카드, 은행 계좌 등을 등록해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비밀번호 인증 등으로 대금을 지불하는 결제 방식이다. 정보기술기업(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는 물론 제조업체(삼성페이, LG페이)와 이동통신사(T페이 등), 유통업체(L페이, SSG페이)까지 뛰어들었다.
일본에서도 간편결제 서비스는 확산 중이다. 유명 관광지인 도쿄 아사쿠사에서는 급증하는 중국인 관광객을 겨냥해 ‘알리페이’ 등 QR코드(격자무늬 바코드) 결제로 돈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스마호결제’(스마트폰 결제)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일본 정부는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현재 18%인 비현금 결제 비중을 2025년 40%까지 올릴 예정이다. 지난 7월 ‘라인페이’ 등 민간업체들과 ‘캐시리스 추진위원회’를 꾸리기도 했다.
한국은 일본과 비교하면 이미 ‘현금 없는 사회’에 꽤 다가섰다. 국내 신용카드 보급률은 2015년 89%를 돌파했다. 현금 사용 비중은 2014년 37.7%에서 2016년 26.0%로 뚝 떨어졌다. 간편결제 시스템이 널리 퍼지면서 현재 현금 사용 비중은 20% 밑으로 떨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은도 현금에서 모바일로 넘어가는 결제 방식의 변화를 주의 깊게 살피고 있다. 금융회사가 아닌 핀테크 기업이 결제시장에 뛰어들수록 은행, 카드사 등 소수 대형 금융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들게 된다. 한은의 통화정책 효과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더 늘어나는 셈이다. 비금융회사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질수록 기존 금융기관의 수익성이 흔들리게 된다. 이는 금융안정 정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가까운 미래에 현금이 사라질 가능성은 낮다. 민좌홍 한은 금융결제국장은 지난 7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지급결제제도 콘퍼런스’에서 “현금이 완전히 사라지거나 디지털 화폐 발행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당분간 낮다”고 말했다. 다만 “모바일 간편결제 등의 확산으로 현금 사용은 지금보다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