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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한마디에… 국제유가, 50달러대 폭락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24일 유류세 한시 인하 계획을 발표하면서 그 배경으로 ‘국제유가 상승 흐름’을 꼽았다. 한국 수입 비중이 높은 두바이유의 경우 지난 3월 배럴당 66달러 수준에서 6개월 만인 9월 77달러까지 훌쩍 뛰었다. 정부는 내년에 80달러 선까지 오른다고 보고 서민·영세자영업자 부담을 덜기 위해 유류세를 내린다고 했다.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배럴당 100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관측되는 등 바야흐로 고유가 시대로 접어드는 모습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11일 아부다비에서 열린 석유수출국기구(OPEC·오펙) 회의에 참석해 다음 달부터 원유 생산량을 하루 평균 50만 배럴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오펙 14개 회원국과 10개 비회원 산유국은 다음 달 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175차 오펙 회의 때 공급 과잉 해소를 위한 감산을 논의키로 했다. 산유국의 공급 축소 움직임에 영향을 받아 13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WTI는 오름세를 보였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에서 날린 “사우디와 오펙이 원유 생산을 줄이지 않기 바란다. 유가는 공급량에 근거해 훨씬 더 낮아져야 한다”는 말 때문에 국제 상품시장은 쑥대밭으로 변했다. 12월 인도분 WTI 가격은 7.1%(4.24달러) 떨어진 55.69달러에 마감했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1월물 브렌트유는 6.6%(4.65달러) 내린 배럴당 65.47달러로 장을 마쳤다. WTI 가격은 2014년 11월 이후 4년 만에 76.41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한 지난달 3일 이후 27%나 하락한 금액이다. 브렌트유도 24%나 고꾸라졌다.

산유국들의 감산 계획은 수요와 공급 원칙에 따른 결정이었다. 미·중 무역전쟁 여파 등으로 글로벌 경기가 하강곡선을 그리는 점을 감안해 내년 공급량이 당초 예상보다 하루 7만 배럴 줄어들 것이라는 오펙 산하 연구소의 보고서가 나온 상태였다.

트럼프의 ‘트위터 협박’은 가뜩이나 글로벌 공급 과잉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여기에다 미국의 이란 제재 관련 세컨더리 보이콧이 완화된 것도 한몫을 했다. 당초 시장은 이란 제재 시 원유 공급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봤는데 대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 혼란으로 미국 달러화 가치가 강세를 보인 점도 유가 하락의 한 요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동평균선’도 기술적인 하락 요인이라고 지목했다. 심리적 지지선 역할을 하는 ‘WTI 200일 이동평균선’이 이미 2주 전 배럴당 65.34달러 아래로 떨어지면서 유가 급락에 군불을 땠다는 지적이다. WSJ는 전문가 의견을 들어 다음 지지선으로 55달러 선을 꼽았다. 아울러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가 언론인 살인사건에 휩싸인 것도 원유 정책에서 미국에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로 작용할 전망이다.

가장 큰 문제는 ‘국제유가 충격’이 글로벌 경제 침체의 전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베네수엘라처럼 수요와 공급원칙을 무시한 원유 증산은 산유국을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비(非)오펙 산유국들의 내년도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은 당초 예상(220만 배럴)보다 12만 배럴이나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시장은 ‘공급 과잉 후폭풍’을 우려하고 있다.

이동훈 선임기자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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