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내부문건이 결정타였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14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2015년 회계처리를 고의 분식회계로 판단한 배경에는 금융감독원이 재감리 때 확보한 ‘문건’이 있다.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 겸 증선위원장은 긴급 브리핑에서 “재감리 기간에 해당 내부문건이 금감원에 제보됐다”며 “이번 증선위에서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고,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진위 여부에 대해 별다른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문건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재경팀이 2015년 6∼11월에 작성한 것이다. 2015년 11월 18일 문건에는 “바이오젠이 콜옵션(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연기함에 따라 1조8000억원을 부채로 반영 시 2015년 말 로직스는 자본잠식이 예상된다. 자본잠식 시 로직스는 기존 차입금 상환 및 신규차입 불가. 상장조건 미충족 시 정상적 경영활동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이라고 적혀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이 문건 작성에 옛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관여했다고 주장했다.
증선위는 이 문건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자본잠식을 막기 위해 고의 분식회계를 한 근거 중 하나라고 판단한다. 김 증선위원장은 “재무제표상 자본잠식을 우려해 지배력 변경을 포함한 다소 비정상적 대안들을 적극 모색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결국 증선위는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가 설립된 2012년부터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에피스를 관계회사로 봤어야 한다고 판정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미국 바이오젠과 맺은 콜옵션 등을 고려할 때 에피스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단독 지배하는 종속회사로 볼 수 없다는 지적이다. 즉 2012년부터 바이오젠의 콜옵션 계약사항을 반영해 에피스에 대한 ‘50%-1주’를 부채로 반영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를 부채로 잡으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자본잠식에 빠진다. 이를 피하기 위해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 판단을 바꾸는 ‘무리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증선위는 2012∼2013년 회계처리는 ‘과실’, 2014년 콜옵션을 처음 공시하는 시점에선 ‘중과실’, 2015년 회계처리를 변경한 것은 ‘고의 분식회계’로 결론 내렸다.
금융 당국은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지배하고 있는 삼성물산에 대한 감리에도 조만간 착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 증선위원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재무제표가 수정되면서 모회사인 삼성물산의 재무제표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감리를 하면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가치를 반영하는 과정에서 고의 분식회계를 했는지 등이 쟁점이 될 전망이다.
한편 이번 결정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 작업에 대한 의혹이 증폭될 가능성도 있다. 향후 검찰 수사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의 관련성을 들여다볼 수도 있다. 다만 금융 당국은 직접 연관성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분식회계는 2015년 7월 합병이 성사된 이후에 저지른 것이라 곧바로 연관된다고 단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성원 임주언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