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힘’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욕설을 퍼붓고, 물건을 던지는 우리 사회의 ‘양진호’(한국미래기술 회장) 같은 상사들에게서 근로자를 보호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관련 법안은 지난 9월 국회 법안 심사 첫 단계를 통과한 뒤 2개월째 감감무소식이다.
쟁점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정의다. 괴롭힘이라는 개념이 자의적이고 추상적일 수 있어 제재 기준을 만들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무급 인턴, 택배기사 등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그러나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이번 기회에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입법의 첫발부터 떼야 한다는 주장도 거세다.
15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가운데 7명은 상사로부터 폭행, 폭언, 과도한 업무 지시, 따돌림 등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법으로는 폭행만 처벌이 가능하다. 이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9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을 처리했다.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개념을 법에 처음 명시하고, 회사는 사건 발생 시 가해자를 제재하는 동시에 피해자의 근무 환경 변경, 유급휴가 등 보호 조치를 두도록 했다.
하지만 법안은 최근 국회 심사 두 번째 단계인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제동이 걸렸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개념 정의가 발목을 잡았다. 법안은 직장 내 괴롭힘을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정신·정서적 고통을 주거나 업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규정했다. 반면 국회 법사위 일부 의원들은 법 문구가 모호해 악용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정신·정서적 고통’과 ‘업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법에 못 박기 어렵다는 것이다.
법 적용 대상의 범위도 문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조항이 근로기준법 테두리 안에서 만들어지다보니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무급 인턴, 특수형태 근로종사자 등은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직장 내 괴롭힘’을 더 이상 간과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는 더 큰 편이다. 법에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선(先)입법, 후(後)보완’을 실현해 보자는 것이다.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는 “직장 내 괴롭힘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법에 열거하면 반대로 그 외는 허용하는 것이 된다”며 “일단 입법을 한 뒤 적용 대상의 확대, 입증 책임의 전환, 사전·사후적 구제 등 미흡한 점에 대해 추가 연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