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학교 간다, 공부한다는 생각만 하면 너무 기뻐서 눈물이 쫙쫙 쏟아져요.”
15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금란고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유영자(78)씨는 수능을 보는 일 자체가 평생의 꿈이었다. 그는 평생교육기관인 일성여중고 학생 가운데 최고령 수능 응시자다. 5남매 사이에서 큰 유씨는 어린 시절 초등학교를 마치고 학업을 중단했다. 어려운 형편 탓에 ‘공부하고 싶냐’는 큰오빠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유씨는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나이 60이 넘으니 건강이 악화됐는데 한이 많아서 그랬던 것 같다”며 “날고 싶고 뛰고 싶은 욕망이 컸다. 말없이 웃음 없이 살았는데 학교 다니고서 우울증도 나았다”고 말했다.
같은 일성여고 재학생 최영란(64)씨도 수능을 하루 앞두고 “이미 어렸을 때 겪어야 하는 일인데 너무 뭉클하다”고 했다. 최씨 역시 가세가 기울면서 남자 형제에게 배움의 기회를 양보했다. 세 딸이 모두 직장인이 된 후 TV에서 본 일성여중고 만학도들의 이야기가 가슴 깊은 곳을 건드렸다. 최씨는 “90세 할머니가 중학교에 다닌다는데 나도 늦지 않았구나 싶었다”며 “처음엔 건강 문제로 딸들이 걱정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엄마가 자랑스럽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번 수능을 앞두고는 가족에게 찹쌀떡과 엿, 수능날 가져갈 새 도시락통을 선물 받았다.
택시기사로 일하면서 다른 평생교육기관인 진형중고에 다닌 백중선(67)씨도 서울 종로구 중앙고에서 시험을 봤다. 초등학교만 마치고 사회에 뛰어든 백씨는 건설회사를 운영하다 부도가 나 길바닥에 나앉는 등 곡절 많은 인생을 살았다. 백씨는 “몇 번이나 포기하려 했는데 아내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이제는 택시 몰고 대학 정문으로 들어가는 게 꿈”이라고 했다. 전날에도 택시 영업을 한 백씨는 “손님들이 시험 잘 보라고 거스름돈을 받지 않으시더라. 응원도 많이 받고 보너스도 받은 기분 좋은 하루였다”고 전했다.
이화여고에서 시험을 본 진형중고 수험생 김경숙(63)씨는 21년째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들과 19년 전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을 돌보며 수능을 준비했다. 오전에는 남편을 돌보고 야간반으로 고등학교를 다녔다.
김씨가 공부하는 이유는 ‘받은 만큼 사회에 돌려주기 위해서’다. 그는 혼자 가족을 돌보며 받았던 사회복지 혜택을 다른 이와 나누기 위해 사회복지사를 꿈꾸게 됐다. 김씨는 “공부가 재밌다는 걸 이 나이가 돼서 처음 알았다”며 “만학도가 아이들과 같이 수능을 본다는 건 도전이다. 사회복지사가 되는 길이 어렵겠지만 끝까지 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박상은 조효석 최예슬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