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내 친박근혜계 의원들이 예전 같지 않은 분위기다. 최근 ‘전원책 파동’을 계기로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의 리더십이 흔들리면서 차기 당권을 둘러싼 신경전이 가열되고 있지만 친박계 내에서는 좀처럼 단일대오가 형성되지 않고 있다. 전당대회 개최 시기와 반문(문재인)연대 결성, 원내대표 경선 구도 등에 있어서도 친박계 의원들 간 입장 차이가 점점 더 뚜렷해지는 양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통과가 2년이 다 돼가면서 구심점을 잃은 친박계가 각자도생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친박 중진인 유기준 의원과 정우택 의원은 15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목소리로 “전 변호사를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외부위원으로 영입했다가 해촉하면서 당의 이미지가 손상된 만큼 2월이 아니라 한시라도 빨리 다음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친박계 핵심이었던 윤상현 의원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지금 대한민국 체제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당권 논쟁이나 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한가한 얘기”라고 말했다. 김태흠 의원도 성명서를 내고 “비대위가 2월 전당대회 일정을 밝혔으니 친박계 중진 의원들은 더이상 흔들지 말고 지켜봐 달라”고 촉구했다.
바른정당 복당파 핵심인 김무성 의원에 대한 입장도 미묘하게 엇갈리는 모양새다. 차기 당권주자로도 분류되는 정 의원은 “다음 지도부는 총선을 지휘해야 하기 때문에 보수 적통 측면에서도 당이 어려울 때 지켰던 사람들이 전면에 서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전당대회 출마설이 제기되는 김 의원이 출마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밝힌 셈이다. 전날 친박계 초·재선 모임인 ‘통합과 전진’ 회동에서도 다수 의원들은 “당 분열의 책임이 있는 인사들이 보수통합 중심에 나서면 안 된다”며 김 의원을 견제했다. 하지만 윤 의원은 “친박이든 비박이든 정권을 좌파에게 헌납한 측면에서 역사의 죄인”이라며 “모두가 잘못을 고해성사하고 과거에 얽매이기보다는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친박 중진 홍문종 의원이 제안한 탄핵 백서 제작에 대해서도 “지금 탄핵 잘잘못을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고 일축했다.
윤 의원은 태극기 세력(탄핵반대세력)과 바른미래당까지 모두 아우르는 반문연대 ‘빅 텐트’를 주장하고 있다. 유 의원도 “당의 지지 스펙트럼이 전에 비해 훨씬 좁아진 상황이니 종잇장이라도 들고 와야 한다.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지지했다. 반면 정 의원은 “과거에 대한 모든 것을 덮고 반문연대로 가기에는 아직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며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다음 달 중순 치러질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친박계 표심이 분화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친박계에서 유 의원이 일찌감치 도전 의사를 나타냈지만, 친박 의원들 일각에서는 비박계로 분류되는 나경원 의원을 내세우려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한국당의 한 재선 의원은 이에 대해 “원래부터 우리당에 친박계가 없다는 것이 입증된 셈 아니냐”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부터 세력으로서의 친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다만 당 관계자는 “탄핵과 분당·복당을 거치면서 의원들 간 친소 관계는 분명히 있고 그에 따른 계파모임도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세력 내에 확실한 구심점이 없다 보니 의원들도 자신의 처지에 따라 백가쟁명식 존재감 높이기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선 이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