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ASEAN) 관련 정상회의 참석차 싱가포르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을 만나 2차 북·미 정상회담 등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논의했다. 미국 내 대표적 강경파인 펜스 부통령은 그동안의 비핵화 상황에 대해 “굉장히 많은 진전이 있었다”고 이례적으로 호평했다.
문 대통령은 선텍컨벤션센터에서 펜스 부통령과 34분간 면담하면서 “펜스 부통령과 함께했던 평창 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한반도의 평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사의를 표했다. 이어 “사실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내고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낸 것은 강력한 한·미동맹의 힘”이라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지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에 큰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펜스 부통령은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의 진전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계속 노력할 생각”이라며 “지금까지 많은 발전이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할 일도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어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한반도 안보나 평화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진행해나가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앞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면담에서도 더 이상 북한의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이 없고, 인질들도 풀려난 상태이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진전이 있었다는 말을 함께 나눴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하와이에서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이 시작된 것을 목도하며 굉장히 큰 영광이라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중요한 조치를 북한이 취해 우리가 가진 공동의 목표를 궁극적으로 달성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펜스 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북쪽과 좀 더 긴밀히 소통하고 대화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펜스 부통령에게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서울이나 판문점에서 개최할 것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펜스 부통령은 면담 직후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과거정부가 했던 실수를 반복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솔직히 우리는 지난 수십년간 북한의 약속만 믿고 제재를 풀거나 경제적 지원을 해줬지만 이후 그 약속은 다시 깨졌다”고 말했다.
이날 펜스 부통령의 직전 일정(미·아세안 정상회의)이 지연돼 문 대통령이 30여분간 기다렸다. 이 탓에 문 대통령의 ‘아세안+3’ 정상회의 참석도 늦어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문 대통령의 모두발언을 대독했다.
문 대통령은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도 참석해 “지난해 EAS 정상회의 이후 한반도에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이산가족이 만났고 미군 전사자 유해가 송환됐다. 비무장지대의 초소가 철수되고 서해는 협력과 평화의 바다로 달라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북한의 비핵화 조치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상응조치를 전제했지만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를 언급한 것도 큰 진전”이라며 EAS 차원의 지지를 호소했다.
싱가포르=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