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S와 같은 AP’… 아이폰 XR, 보급형이 아니다

아이폰XR은 이전 세대보다 카메라 센서가 커졌고 뉴럴 엔진 성능도 향상돼 저조도 환경에서도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애플 제공




아이폰XR 앞에는 ‘보급형’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같이 출시된 아이폰XS와 아이폰XS 맥스라는 더 비싼 제품이 있는 탓이다. 하지만 일주일간 아이폰XR을 써보니 보급형 제품이라고 보는 건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폰XR은 과거 아이폰5c처럼 ‘뭔가 빠져 있는 보급형’이 아니었다. 자동차를 살 때 자신의 상황에 맞게 옵션을 선택하듯 가격, 취향 등을 고려해 아이폰XS나 아이폰XR을 고르면 된다. 아이폰XR이 아이폰XS와 다르게 제시하는 옵션은 LCD 디스플레이, 싱글 카메라, 알루미늄 소재 사용 정도다.

아이폰XR이 보급형이 될 수 없는 근거는 A12 바이오닉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탑재했기 때문이다. 아이폰XS와 같은 AP를 써서 아이폰XR 성능은 아이폰XS와 기본적으로 같을 수밖에 없다. 아이폰XR은 가벼운 웹 검색부터 고사양 게임까지 막힘없이 쾌적하게 작동됐다.

사진 품질은 전 세대 제품보다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특히 그동안 약점을 보였던 저조도 환경에서 사진 품질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업계 최고 수준인 삼성전자 갤럭시S9, 노트9 등을 거의 따라잡았다고 할 만하다. 사진 촬영의 편의성까지 고려하면 아이폰XR로 사진을 찍는 게 다른 안드로이드 스마트폰보다 즐거웠다.

A12바이오닉에 탑재된 차세대 뉴럴 엔진 능력은 인물 사진을 찍을 때 제대로 발휘됐다. 듀얼 카메라인 아이폰XS는 렌즈 2개의 초점 거리 차이를 측정해 뒷배경을 흐리게 하는 ‘보케’ 기능을 구현한다. 반면 후면에 카메라가 하나뿐인 아이폰XR은 오롯이 뉴럴 엔진의 힘으로 인물 사진을 만들어낸다.

아이폰XR에서 인물 모드를 작동시키면 피사체가 사람인지 아닌지 알아서 식별한다. 인물 모드는 사람을 감지했을 때만 작동된다. 동물이나 사물에 인물 모드를 적용하려고 하면 ‘사람이 감지되지 않았습니다’라는 문구가 뜬다. 촬영을 하고 나면 1초에 최대 5조번의 연산을 하는 뉴럴 엔진이 인물과 배경을 구분하고 배경을 흐리게 만든다. 아이폰XR이 사람과 배경을 구분해내는 솜씨는 괜찮았다. 덕분에 사진 편집 모드로 들어가서 원하는 만큼 배경을 흐리게 하거나 또렷하게 했을 때 자연스러운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아이폰XR을 쓰면서 인상적이었던 건 배터리 사용 시간이었다. 애플은 아이폰8 플러스보다 1.5시간 더 쓸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인터넷 서핑 최대 15시간, 동영상 최대 16시간 등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했다. 아침에 100% 충전을 하고 나가면 저녁에 집에 돌아올 때까지 충전할 일이 없었다. 폰을 들고 다니면서 부하가 많이 걸리는 게임을 계속하지 않는 다음에야 온종일 쓰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아이폰XR 사양에서 가장 불만이 많은 건 디스플레이 해상도다. LCD 디스플레이는 여전히 선호하는 사용자가 있다고 해도 2018년 나오는 고사양 스마트폰의 해상도가 풀HD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용해보면 해상도로 인한 불만을 느낄 수 없었다. 고해상도 화면을 채택한 다른 폰과 같은 화면을 두고 비교해도 눈으로 구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 부분은 사용자 성향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어 아이폰XR의 약점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아이폰8 이하 홈버튼이 있는 아이폰을 쓰는 사용자라면 아이폰XR로 업그레이드를 할 이유는 충분히 있어 보인다. 아이폰XR 등장으로 애플은 지문 인식인 ‘터치ID’로 대표되는 홈버튼 시대가 끝났고 전면 풀스크린과 얼굴로 잠금화면을 푸는 ‘페이스ID’ 시대가 왔다고 선언했다.

반면 지난해 아이폰X를 산 고객이라면 굳이 올해 나온 아이폰 신제품을 살 이유는 없어 보인다. 해마다 폰을 사기엔 아이폰XR(99만∼120만원) 가격이 만만치 않게 높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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