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목동병원 가정의학과 심경원 교수는 비만치료 전문가다. 최근 20년간 비만과 대사증후군, 노화 예방 및 치료에만 전념해 왔다.
비만은 그 자체로 대사증후군이자 고혈압과 당뇨를 악화시키는 위험인자이기도 하다. 비만과 질병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가 있다는 말이다.
심 교수는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2002년부터 이대목동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지상파 방송의 비만 예방 프로그램에 전문가로 자주 출연, 생활습관병의 뿌리인 비만의 폐해를 널리 알려 ‘비만 파수꾼’이란 별명을 얻었다.
심 교수는 비만진료와 국민계몽 활동을 병행하며 바쁜 가운데서 연구 활동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는 19일 “교수가 된 이후 지금까지 해마다 5∼8편의 연구논문을 국내외 학술대회와 학술지에 발표해 왔다”며 “최근 5년간 SCI(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급 국제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수만 해도 수십 편에 이른다”고 전했다.
이중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04년 의학박사 학위논문이다. 건강해 보이는 비만 여성을 대상으로 혈관경직도 검사를 시행하고, 체질량지수(BMI) 25㎏/㎡ 미만자와 이상자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분석한 내용이었다.
심 교수는 이 연구를 통해 “겉으로 건강해 보이는 비만환자라도 BMI가 25㎏/㎡ 이상에 이르면 나이와 관계없이 이미 동맥경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건강한 비만’이라는 말도 이를 계기로 설득력을 잃게 됐다.
식생활의 서구화, 인스턴트식품 등 정크 푸드의 범람과 함께 날로 심각해지는 비만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심 교수에게 물어봤다.
비만은 흡연 못지않은 수명단축 위험요인
비만은 한마디로 체내에 지방이 과도하게 축적된 상태다. 지방이 많이 쌓이면 우리 몸에선 심뇌혈관질환 당뇨 암 등의 질병이 생겨 삶의 질이 떨어지고 수명도 줄어들기 쉽다. 흔히 비만 관련 문제를 흡연으로 인한 폐해와 비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만은 단순히 게으르거나 절제를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비만한 사람의 지방세포는 일반인보다 더 크다. 세포 수도 상대적으로 더 많다. 일반인과 달리 비정상적인 지방세포가 그만큼 많다는 말이다.
지방세포 중에선 특히 복부지방세포의 비율이 높은 게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다른 부위는 비교적 괜찮아 보이는데, 허리가 굵은 사람들은 내장지방이 복부에 많이 쌓여 있다는 표시다. 내장지방은 먹은 양에 비해 소비하는 칼로리가 적을 때 뱃속 내장 사이에 차곡차곡 쌓이는 지방이다.
심 교수는 “복부에 내장지방이 많은 사람은 당뇨와 고혈압, 이상지혈증(고지혈증) 등 대사증후군 발병위험이 높을 뿐만 아니라 심뇌혈관질환이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같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뱃살과 내장지방은 사촌지간
속칭 똥배로 불리는 뱃살은 내장지방의 상위 개념이다. 뱃살은 외형적으로 복부둘레와 관계가 있지만, 위치에 따라 피하지방과 내장지방으로 구별된다. 겉으로 드러나 우리 손으로 만져지는 것이 바로 피하지방이다. 내장지방은 뱃속 내장 사이사이에 위치해 겉으로는 만져지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말랐어도 배가 나온 체형(복부비만)이라면 내장지방이 과도하게 쌓여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심 교수는 “몸무게가 정상 이하 수준인 사람도 눈에 보이지 않는 내장지방이 많은 경우가 종종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내장지방은 실로 심뇌혈관질환 등 생활습관병을 부르는 화근덩어리다. 내장지방은 분해도, 축적도 다 잘되지만, 특히 분해 과정에서 혈관을 수축시키고 동맥경화를 촉진하면서 당뇨 고혈압 등과 같은 혈관질환을 일으키는 것이 문제다.
내 뱃속에 내장비만이 얼마나 있는지 가늠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복부비만에 해당되는지 여부와 BMI를 재는 것으로 짐작이 가능하다. BMI는 자기 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이다. 보통 BMI가 25㎏/㎡ 이상이면 비만으로, 30㎏/㎡가 넘으면 고도비만으로 간주된다. 허리둘레 측정법으로는 남자 90㎝, 여자 85㎝이상일 때 복부비만으로 각각 판정된다.
어느 경우든 복부CT를 찍어보면 내장지방이 얼마나 많은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치료 위해 굳이 약까지 써야 하나
비만 치료는 궁극적으로 살이 찌는 행동 또는 습관을 교정해 살이 안 찌는 행동이나 습관으로 바꾸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아무리 먹어도 살이 빠지는 체질로 바꿔주는 방법이나, 적절한 운동과 식이요법을 실천하지 않고도 살을 빼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체중조절과 더불어 비만으로부터 탈출을 하기 위해선 살을 빼려는 본인의 행동수정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이어 본인의 잘못된 습관을 바꾸는데 도움을 주는 식욕억제제 등 약물요법과 운동요법을 통해 체중을 조절한다.
이 과정에서 주의할 것은 지나치게 약물치료에 의존하는 행동이다. 식욕을 억누르지 못해 충동적으로 폭식을 하거나 야식을 하는 습관이 있는 비만 환자들이 장·단기적으로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식욕억제제가 적잖이 있다. 하지만 이들 약 복용만으로 살을 빼겠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무엇보다 부작용을 겪기 쉽다. 또 살이 찌는 습관 또는 행동을 개선하지 못한 채 약물에만 계속 매달리다 보면 결국 살이 다시 찌는 요요현상을 부르게 된다.
심 교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정기간 식욕억제제를 복용해 감량목표를 이룬 뒤 살이 빠지는 생활습관과 운동을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생활습관 교정 및 행동수정만으로 힘든 경우가 있다. 바로 고도비만이다. 이들은 이미 지방세포의 수가 너무 많아 감량을 통해 지방세포의 크기를 줄여놔도 금방 다시 살이 찌거나 감량조차 어려울 때가 많다. 이때는 위 용적을 줄여주는 비만수술로 해결해야 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비만수술 대상은 BMI 40㎏/㎡ 이상의 초고도비만, 또는 BMI 35㎏/㎡ 이상으로 심혈관질환, 당뇨, 수면무호흡증 등과 같은 병을 동반하고 있을 경우다.
심 교수는 “어느 경우든 체중조절에 성공한 후 좀 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선 반드시 적절한 식생활 개선과 함께 규칙적으로 유산소운동과 근력운동을 해주는 것이 권장된다”고 말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