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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전정희] 이제야 훈장 받은 아버지



부산에 살고 있는 박의영 은퇴목사(전 경성대 교목)의 전화 목소리가 떨렸다. “이제야 아버지의 독립운동이 나라로부터 인정받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의 아버지 박문희(1901∼1950)는 부산 동래 출신으로 1930년대 의열단장 김원봉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다 피검돼 징역을 사는 등 고난을 겪었다. 박문희의 여동생 박차정(1910∼1943)은 김원봉의 부인이다. 박차정은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부산엔 박차정 동상과 생가가 있다. 남동생 문호(1907∼1934) 역시 중국에서 망명 투쟁을 벌였다. 이들의 어머니 김맹련은 한글학자이자 북한 정치가였던 김두봉과 사촌간이다. 일제 강점기 부산 기장과 동래에는 진보적 지식인이 많았고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가 적지 않았다.

박 목사는 지난 17일 ‘순국선열의 날’ 아버지 대신 독립장을 받았다. 이명박정부 등 보수정권 때 몇 차례 공적 조서를 냈으나 뚜렷한 이유 없이 인정받지 못하곤 했다. 아버지가 경성성서학원을 졸업한 목회자였고 사회주의계열 인물들과 연결돼 있어서 그런 것 아닌가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신사참배 반대 등 항일 투쟁으로 투옥된 기독교인의 독립운동이 인정받지 못하는 것과 같은 맥락일 수 있었다.

박 목사는 젊은 시절 꿈을 펼 수 없었다. 박정희 정권 때 정보과 형사들이 수시로 집안 사정을 염탐하는 등 보이지 않는 연좌제가 적용됐다. 신학을 한 동기가 됐다. 목사가 되고서도 음습한 그림자가 지워지지 않았다. “전두환 정권 때는 강단의 설교 내용까지 체크하곤 했다”고 말했다. 해외 성회라도 할 경우 남들보다 까다로운 신원조회는 기본이었다. 이 부자 목회자의 삶은 국민일보가 보도(2018년 1월 6일 8면)한 바 있다. 또 학자 신용하 김재승, 출판인 최수경 등의 연구와 탐사에도 힘입은 바 크다.

“문호 삼촌의 경우는 후손도 없습니다. 저 역시 나이 들어 선대의 업적을 다루기가 쉽지 않고요. 그럼에도 제 대(代)에서 정리하지 않으면 친일을 세탁한 이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계속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번에 국가보훈처 등 관계기관이 정말 열심히 나서 주어 감사할 따름이지요.” 박 목사는 동래 ‘박차정 의사 생가’를 ‘박문희 박차정 박문호 생가’로 바꾸었으면 한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아버지도 그렇지만 저도 예수의 말씀을 좇아 살고자 했던 그리스도인으로 한마디 하자면 목회자는 좌·우 이념을 넘어 그 무엇을 구해야 합니다.”

전정희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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