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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쇼핑몰도 월 2회 휴무” ‘을과 을 대결’ 부추기는 유통산업발전법

1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몰을 찾은 시민들이 매장을 오가고 있다. 현재 논의 중인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코엑스몰을 포함한 복합쇼핑몰은 주말에 영업이 제한된다. 김지훈 기자








서울에서 소규모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영훈(47·가명)씨 가게의 월 평균 매출액은 3000만원 정도다. 김씨는 아내와 함께 일하면서 주방 직원 2명, 홀 아르바이트생 1명을 두고 있다. 임대 보증금, 인테리어 등에 들어간 대출금과 인건비 등을 빼고 나면 김씨 부부가 실제 손에 쥐는 돈은 두 사람 인건비 정도다.

그런데 김씨 부부는 더 큰 위기를 맞게 됐다. 정부가 복합쇼핑몰을 규제 대상으로 삼겠다고 계획하면서다. 김씨는 자영업자지만 대기업이 운영하는 복합쇼핑몰 안에서 장사를 한다. 복합쇼핑몰을 규제하면 김씨도 덩달아 규제를 받게 된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가 강제로 영업을 제한할 수 있는 유통 업태에 복합쇼핑몰을 포함시키는 법안(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논의 중이다. 이 법안은 대형마트처럼 복합쇼핑몰도 월 2회 일요일에 의무적으로 쉬도록 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지역 상권을 살리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복합쇼핑몰 영업 제한은 입점 자영업자의 피해로 직결돼 ‘을과 을의 대결구도’가 된다는 게 문제다. 복합쇼핑몰 입점 업체의 70%는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이 운영한다. 나머지 30%는 명품 브랜드 매장 등 대기업이 운영 주체다. 지역 상권 자영업자를 살리기 위해 또 다른 자영업자들이 희생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는 셈이다. 김씨는 “겉보기엔 대기업 규제지만 진짜 피해를 받는 건 자영업자다. 대기업의 손해는 실적이 줄어드는 정도겠지만 우린 생업을 접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가 서울 강남권과 강북권, 경기 북부와 남부의 복합쇼핑몰 6곳을 취재한 결과 복합쇼핑몰 규제 추진에 대해 입점 자영업자들은 “장사를 접으라는 뜻”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액세서리 전문점을 운영하는 A씨는 지난 12일 “일요일에 쉬겠다는 사장이 있다면 그건 둘 중 하나다. 장사가 너무 잘 되거나, 사장이 제정신이 아닌 것”이라고 말했다. A씨 얘기는 이렇다.

“이 매장 차리는 데 1억5000만원이 들어갔어요. 주말에 쉬라고요? 평일 매출의 2∼3배는 나오는데 한 달에 두 번씩 주말에 쉬면 월 매출이 10∼20%는 빠져요. 임대 보증금도, 수수료도 그대론데 입점 사장들은 돈 벌지 말라는 게 말이 되나요?”

B씨는 보증금 2000만원을 투자해 잡화점을 열었다. 평일인 지난 13일 6시간 동안 다녀간 손님은 고작 15명 정도였다. B씨는 “전통시장이나 지역 상권을 살리는 걸 반대하진 않는다”면서도 “몰에 입점한 우리도 소상공인이고 서민이다. 아르바이트생 인건비 월 150만원도 부담인데 주말 매출마저 포기하라는 건 가혹하다”고 말했다.

법 개정을 추진하는 산업통상자원부도 이런 상황을 모르진 않는다. 산업부 관계자는 “상권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만들려는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중소상인에 대해선 자치단체장 권한으로 보호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쇼핑몰이 위치한 시·군·구의 장이 일부 업종이나 업체를 의무 휴무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의 보호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 보호 장치가 제대로 작동할지는 의문이다. 쇼핑몰 입점 상가 대부분이 쉬는데 몇 개 점포만 문을 연다고 방문객이 과연 얼마나 있겠냐는 비판이 나온다. 옷가게를 운영하는 C씨는 “대다수 점포가 문 닫고 을씨년스러운 곳에 쇼핑하러 올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매출은 줄지만 임대료는 달라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복합쇼핑몰과 입점 업체 간 계약은 임대보증금을 내고 매달 정액의 임대료를 내거나, 매출에 연동해 수수료를 내는 식으로 이뤄진다. 기존의 계약은 연중무휴를 전제로 이뤄졌다.

이런 상황에 대해 제도적으로 보완할 방법은 없다. 사적 계약 관계에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신세계 롯데 등 복합쇼핑몰을 운영하는 대기업은 “법안이 개정되면 계약 관계도 다시 살펴봐야 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 놨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복합쇼핑몰이 주말에 쉰다고 지역 상권이 살아나겠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중소기업연구원이 펴낸 보고서 ‘파급력이 큰 복합쇼핑몰: 내몰림 효과와 빨대 효과’를 보면 경기도 하남 스타필드 주변 상권의 매출은 스타필드 입점 전후로 오히려 상승했다.

복합쇼핑몰 규제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의 월마트가 100명의 일자리를 만들면 지역상인 30∼40명이 사라진다는 ‘월마트 효과’는 옛날 얘기가 됐다. 지금 더 파괴적인 존재는 아마존(전자상거래 업체)이기 때문”이라며 “복합쇼핑몰은 오히려 ‘상권창출형’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의 규제가 얼마나 효과적이었느냐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대형마트 규제로 전통시장이 살아났다는 실증적이고 깊이 있는 연구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다만 전통시장 상인들은 그 효과를 어느 정도 ‘체감’한다고 한다. 서울의 한 전통시장에서 상인회장을 맡고 있는 최모씨는 “대형마트가 쉬는 날 매출이 20∼30% 잘 나온다고 말한다. 하지만 근거 자료를 집계한 적은 없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지역상권이 복합쇼핑몰과 나란히 서서 경쟁력을 갖추기는 어렵기 때문에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20일 “창의적인 상품개발로 골목상권도 살리고 대규모 점포도 상생할 수 있는 기틀을 (규제로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복합쇼핑몰 규제가 소비자들에게는 악영향을 끼친다. 복합쇼핑몰에 거의 빠짐없이 입점해 있는 게 극장과 서점이다. 콘서트홀이나 소극장도 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몰과 송파구 롯데월드몰에는 대형 아쿠아리움이 들어서 있다. 코엑스몰의 별마당도서관은 주말 명소가 됐다. 그런데 쇼핑몰이 쉬면 원칙적으로 문화시설도 문을 닫아야 한다. 시민들은 주말에 갈 만한 곳을 잃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엔 지역사회에 다양한 형태의 문화 공간이 충분하지 않다. 복합쇼핑몰이 사실상 문화시설로 기능해왔다. 그나마 서울은 나은 편이다. 지방으로 갈수록 문화시설이 쇼핑몰에 몰려 있는 경우가 적잖다. 정부가 손 놓고 있는 동안 각종 문화시설은 쇼핑몰로 수렴됐다.

18일 코엑스몰 안 수유실에서 취재에 응한 김은정(37)씨는 5살, 1살 형제를 키우며 아쿠아리움 연간회원권을 끊고 주말에 종종 몰을 찾는다. 김씨의 의견이 인상적이다.

“봄·가을엔 미세먼지, 여름엔 폭염, 겨울엔 맹추위로 아이들 데리고 갈 만한 곳이 마땅찮다. 영유아 부모에겐 마음 편히 수유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중요하다. 쇼핑몰은 물건만 사러 오는 곳이 아니라 문화 체험도 하고, 식사도 할 수 있는 곳이다. 가족 단위로 즐길 만한 문화 공간을 만들어주지는 못할망정 있는 곳마저 차단하는 건 너무 폭력적이다.”

상권의 다양성을 위해 기존 쇼핑몰을 문 닫게 하는 건 난센스라는 지적이 많다. 쇼핑몰 휴점이라는 극단적인 카드를 쓰는 것보다 지역 상권의 경쟁력을 키우고 발전적인 방향을 모색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서울 광장시장이나 가락농수산물시장, 성수동 수제화 거리, 홍대 부근 연트럴파크, 이태원 경리단길 등은 저마다 경쟁력을 갖춰 상권을 살려낸 사례들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업무 영역을 제한하는 규제는 성과가 높지 않다는 게 학계 전반적인 의견”이라며 “상권 보호도 안 되고 소비자들은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어서 (규제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수정 손재호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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