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1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정부는 ‘징용공(徵用工)’이 아니라 ‘구 조선반도출신노동자’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강제의 의미가 담긴 징용이란 말을 안 쓰겠다는 얘기다. 이는 우리 대법원이 지난달 30일 신일철주금(구 신일본제철)에 손해배상을 명한 판결과 무관하지 않다. 일본 정부는 판결 직후부터 한국과 한국 정부에 비난을 퍼붓고 있고, 한국 정부는 아직까지 사법부 판결을 존중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을 뿐 이렇다 할 대응이 없다. 대법원 판결의 본질은 무엇인지, 배경과 향후 전망에 대해 알아본다.
개인청구권 인정·불법행위 위자료 배상 판결
이번 판결은 2012년 대법원 결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징용 피해자 이춘식씨 등 4명이 2005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2008년 1심, 2009년 2심에서 각각 원고패소 및 항소기각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2년 이를 파기환송했고, 서울고법은 2013년 신일철주금에 1인당 1억원을 배상토록 판결했다. 피고 측의 불복으로 소송은 대법원에 재상고됐고, 마침내 대법원은 지난달 30일 최종 판결을 내렸다.
배상 판결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는 강제동원 피해자가 일본 기업에 위자료를 요구하는 것이다. 둘째,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 청구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1965년 한·일 수교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청구권협정 협상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며 “한·일 양국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 성격에 관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즉 65년 한일협정은 일본의 불법행위를 분명하게 적시하지 못했다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셈이다. 그 의미는 ‘청구권협정’에서 두드러진다. 청구권협정의 원래 이름은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다. 명칭만으로도 경제협력에 초점을 더 맞춘 협정으로 읽힌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 중이었는데 자본이 부족해 계획을 대폭 축소해야 했다. 따라서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기보다 일본의 자금 공여와 경제협력이 더 절실했다. 게다가 일본은 처음부터 식민지배에 대한 추궁을 피해가려고 했다. 결과적으로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와 배상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청구권협정은 사실상 경제협력협정으로 변질됐다.
한국 정부의 보상 노력 미흡
2005년 한일협정 문서가 전면 공개됐다. 당초 한국 정부는 징용자 배상과 관련해 징용 피해자를 103만명으로 상정하고 배상금으로 12억2000만 달러를 요청했다. 이는 정부가 외교보호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패전 직전 한반도에 거주하던 일본인의 재산에 대한 외교보호권을 거론하며 한국 정부의 요구 수위를 낮추도록 유도했다. 결국 일본 정부는 자국의 외교보호권을 불문에 부치는 대신 한국 정부에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로 지불키로 했다(청구권협정 1조). 이후 일본은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음을 확인한다’(2조)는 것을 금과옥조로 삼아 식민지배 배상 문제가 나올 때마다 방어논리로 활용했다.
한국 정부는 징용 피해자 등을 대신해 받은 청구권 자금을 경제건설에 주로 투입했지만 정작 개인 보상에는 소홀했다. 74년이 돼서야 ‘대일민간청구권보상법’이 나왔다. 정부의 대응은 소극적이었으며, 보상액은 사망자 8552명에게 1인당 30만원 지급을 비롯해 약 92억원에 불과했다. 본격적인 개인 보상은 그로부터 30년 후인 참여정부 때 추진된다.
노무현정부는 보상과 더불어 징용을 비롯한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진상규명과 피해자 지원을 위해 법과 제도를 정비했다(연표 참조). 피해자를 약 22만명으로 보고 신고를 받았으나 실제로는 9만5000여명만 참여했고, 그중 7만7000여명이 개인 위로금으로 1인당 2000만원을 받았다. 노무현정부는 징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청구권협정의 당자사인 한국 정부의 몫임을 분명히 했다. 다만 65년 협정 당시 거론되지 않았던 위안부 피해자, 사할린 잔류 한국인, 한국인 피폭자에 대한 배상은 일본 정부의 몫이라고 못박았다.
2005년부터 진행됐던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지원 기구는 2016년 6월 말 해산됐다. 김광열 광운대 교수는 “10여년 동안 존속했던 조사·지원 기구가 제대로 된 보고서를 만들고 일반에 공개한 뒤 그에 입각해 총체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게 옳다”고 주장한다. 청구권협정에서 징용 피해자 대신 외교보호권을 행사한 한국 정부의 개인 보상은 아직도 미흡하다는 뜻이다.
일본 정부가 비판하는 대상은 누군가
대법원 판결에 대해 일본 정부의 반응은 비난 일색이다. 지난 14일자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해외공관이나 국제회의장에 ‘판결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취지의 문서(What are the Facts)를 영문으로 만들어 배포하는 등 국제 여론전을 펴고 있다. 징용 피해자 배상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문제’임을 강조하는 한편 판결에 대해 ‘협정 위반’ ‘2국 간 법적 기반을 뒤집는 행위’라며 한국을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대로 대법원 판결은 65년의 청구권협정에서 거론되지 않았던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 청구다. 더구나 개인청구권은 일본도 인정하고 있다. 91년 8월 27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한 야나이 순지 당시 조약국장은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는다”고 밝혔고, 최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중의원 외무위원회에서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했다. 고노 장관은 그러면서도 “요구할 수는 없다”는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을 늘어놨다. 일본 정부가 청구권협정 당시 외교보호권을 따지지 않기로 했지만 일본인의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원론을 강조하는 취지지만 어쨌든 한국 입장에서는 납득할 수 없다.
일본 정부·여당은 비난 대상을 잘못 알고 있다. 판결을 내린 대법원이 아니라 한국 정부를 향해 반발하는 것도 문제지만 판결 내용이 청구권협정에서 다루지 않은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 청구임을 분명히 했음에도 이 점은 전혀 거론하고 있지 않다. 이뿐 아니라 사법부와 행정부의 분립은 민주주의 국가의 근간인데도 이를 문제 삼아 ‘협정 위반’ 운운하고 있다.
기업의 배상을 가로막는 일본 정부
무엇보다 대법원의 배상 판결의 피고는 강제징용자를 활용한 일본 기업들인데도 정부가 나서서 기업들의 대리인 노릇을 하는 것도 상식적이지 않다. 서울 주재 일본 기업인들도 익명이지만 “사태를 악화시키는 것은 일본 정부가 기업들이 배상하겠다는 의지를 원천봉쇄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중국인 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에 제기한 배상 소송은 2000년 가지마건설, 2009년 니시마쓰건설, 2016년 미쓰비시머티어리얼 등이 사죄와 더불어 기금을 통해 보상하는 화해 방안으로 해결된 바도 있다.
일본 정부로서는 비슷한 소송이 줄을 이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기존 방어논리만 앞세워 더 이상의 확산을 경계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첫 단추부터 잘못 꿴 식민지배의 불법성 여부, 불법행위에 따른 위자료 청구 등의 문제는 더 이상 피해 가기 어렵다. 회피하면 할수록 문제는 얽히고 한·일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게 될 뿐이다.
징용 관계자 모두 협력해 문제 풀어가야
그러나 65년 한일협정의 근간을 지금 다시 조율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양국의 장기적 과제로 넘기더라도 당장은 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 해결이 중요하다. 당사자 중심으로 문제를 풀 수도 있다. 여기서 당사자란 일차적으로 징용 피해자를 대신해 청구권 자금을 받은 한국 정부, 청구권 자금을 지원받아 성장한 포스코 등 한국 기업들, 징용자를 받아 활용했던 일본 기업들이다. 이들이 함께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본 정부가 일본 기업의 참여를 막아서면 안 된다. 다만 대법원이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판시했지만 실제로 배상이 추진되기엔 제약이 적지 않다. 따라서 강제집행보다 기금 마련과 재단 구축을 통한 화해 방안도 활용될 수 있다. 정부도 연내 문제 해결을 위한 최소한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조용래 대기자 jubi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