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사진)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법관 인사 불이익 문건의 후폭풍이 거세다. 현(現) 대법원이 세 차례 자체조사 끝에 “판사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없다”고 발표한 것과 달리 ‘양승태 사법부’ 당시 일부 법관에 대한 인사 불이익 검토 정황이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기 때문이다.
20일 검찰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은 재임기간 사법행정에 비판적 목소리를 낸 법관들에 대한 인사 불이익 조치를 직접 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사 불이익 방안과 일반 원칙 적용을 1·2안으로 나눈 뒤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V자’ 표시를 하는 식이다. 이 문건은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결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내용은 서울중앙지검 사법행정권 남용수사단(단장 한동훈 3차장검사)이 지난 6일 행정처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보고서’(2015년 1월 작성)를 통해 확인됐다. 19일 열린 법관대표회의에서는 이 문건의 내용 확인을 요청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검찰이 확보한 인사 불이익 문건에는 2014년 8월 양 전 대법원장이 권순일 당시 행정처 차장을 대법관으로 제청하자 이를 비판했던 송승용 부장판사를 지방 전보시키는 방안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송 부장판사는 문건 작성 직후인 2015년 2월 실제로 창원지법 통영지원으로 발령됐다. 2014년 9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댓글조작 사건 1심의 무죄 판결을 ‘지록위마’라고 비판한 김동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려한 정황도 포착됐다. 검찰은 이 같은 사례들을 인사 불이익 문건이 실제 실행된 정황인 것으로 보고 있다.
2014년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직을 맡아 사무분담 방식을 놓고 법원장과 갈등을 빚은 김예영 부장판사와 같은 해 한 언론사에 세월호 특별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글을 쓴 문유석 부장판사도 인사 불이익 검토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검찰 수사 내용은 대법원 특별조사단(특조단·단장 안철상 행정처장) 발표와도 배치된다. 특조단은 지난 5월 자체조사 결과 “비판적 법관들에 대해 인사상 불이익을 부과한 자료는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발표했다. 김명수 대법원장도 지난 6월 “어떤 법관도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향후 문건이 실제 위법한 걸로 판단될 경우 부실조사 등에 대한 책임론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편 검찰은 박병대 전 행정처장(대법관)을 이날 이틀 연속 소환한 데 이어 오는 23일 고영한 전 행정처장(대법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할 방침이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