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시를 둘러싸고 두 가지 명제가 충돌하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영역 31번 문제에서 비롯된 ‘수능이 사교육만 배 불린다’가 하나고, 서울 숙명여고 사태가 부른 ‘학생부 못 믿겠다’가 다른 하나다. 지난 8월 31일 대입제도 개편에서 모든 대학이 수능 성적 위주로 30% 이상 뽑아야 한다는 ‘정시 30%룰’로 어정쩡하게 봉합됐던 정시·수시 논쟁이 다시 꿈틀댈 조짐이다.
국어 31번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킬러 문항’(초고난도)들은 수능의 결점을 부각시켰다. 한날한시에 같은 문제로 경쟁하는 수능은 공정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함정이 있다. 현재 수능은 배점 낮은 일반 문항을 기계적으로 풀어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하고 이를 킬러 문항에 쏟아야 고득점을 받는다. 특수목적고 자율형사립고 등 일부 학교를 뺀 대부분의 공교육 영역에선 이런 훈련을 해주지 않는다.
킬러 문항이 상위권 대학 진학 여부를 결정하는데 공교육은 학원 가 배우라고 등 떠미는 게 현실이다. 킬러 문항을 따로 뽑아 집중 훈련을 받은 학생과 EBS와 공교육에만 의존해 공부한 학생이 공정 경쟁한다고 보기 어렵다. 전문가들이 “불수능으로 사교육비가 증가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정부가 정시선발 비율을 30% 이상으로 의무화해 괴물급 킬러 문항은 앞으로도 출제가 불가피하다.
숙명여고 사건은 반대로 수능 확대에 강력한 명분을 제공한다. 내신 성적은 물론 교사들이 작성하는 학교생활기록부의 신뢰에 큰 타격을 입혔다. 지난 6일 숙명여고 교무부장이 구속되자 ‘못 믿을 교사’ ‘못 믿을 내신 성적’이란 분위기가 더욱 고조됐다. 지난 대입개편 논의 과정에서 정시확대 주장을 폈던 시민단체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등은 전수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또 ‘상피제’(부모 재직 고교에 자녀 입학 금지)는 근본 해결책이 아니라고 본다. 교사의 자녀가 아니더라도 가까운 친척이나 지인 자녀의 성적을 조작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CCTV 설치 같은 대증요법은 교사의 비리가 더욱 치밀해지는 역효과만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래서 수능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만이 대입 불신을 해소하는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또다시 대입제도를 손댈 가능성은 높지 않다. 지난 대입 개편 때 큰 곤욕을 치렀기 때문이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까지 등판시켰지만 결과는 문재인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의 경질과 대입제도를 임기 내 손대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고교 내신 성취평가제나 고교학점제 같은 대입과 밀접한 정책은 다음 정부로 미뤄버렸다.
그렇다고 불씨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다음달 5일 수능 성적이 통지되면 2019학년도 대입 일정이 본격화된다. 공교육만으로 고득점을 받기 어렵다는 원성이 높아질 수 있다. 다음달 17∼23일에는 전국 초·중·고교 감사결과가 실명으로 공개된다. 학생부 작성이나 내신 성적 관리와 같은 대입 관련 학사 분야에서 허점이 다수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초·중·고교 감사결과 공개는 지난 15일 예정이었으나 한 달가량 미뤄졌다. 정부는 정확한 정보 공개를 연기 이유로 댔지만 숙명여고 교무부장 구속 직후란 점을 고려해야 하는 속사정이 있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감사결과 공개로 발표되는 내용이 학생부 불신 분위기에 기름을 끼얹을 정도로 심각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