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부가 북한 비핵화 협상과 대북 제재 등을 조율하기 위해 신설한 워킹그룹이 출범한 날에도 한·미 간 미묘한 엇박자가 감지됐다.
한·미 워킹그룹은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첫 회의를 갖고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우리 측 대표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회의를 마친 뒤 “미국 측이 남북 철도 공동조사 사업에 대해 강력한 지지(strong support)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남북 협력 사업을 둘러싼 한·미 간 공조에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이 본부장은 이어 “한·미가 워킹그룹을 만든 것은 지금까지 해온 양국 간 협의를 더욱 체계화하고 정례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의 발언은 뉘앙스가 달랐다. 그는 국무부 브리핑에서 “한반도 평화와 북한 비핵화가 남북 관계 진전에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한국에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항상 해온 말이긴 하나 워킹그룹 출범이라는 의미 있는 날에도 똑같은 말을 던진 것은 예사롭지 않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미국이 남북협력 과속에 대한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고 견제구를 던진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폼페이오 장관은 한발 더 나갔다. 그는 “서로가 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고, 미국이나 한국이 상대방이 알지 못하거나 의견 또는 생각을 제시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 워킹그룹 신설의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폼페이오 장관이 한국에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풀이했다. 북한 비핵화 협상에 있어 한국 정부가 미국과 다른 소리를 내지 말고, 미국 몰래 독자적으로 움직이지 말 것을 압박하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한·미 양국이 워킹그룹에 대해 다른 인식을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한국은 조율기구에 방점을 찍고 있는데, 미국은 조율과 견제를 병행하는 기구로 상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워킹그룹 첫 회의에는 한·미 정부의 북핵 전문가들이 총출동했다. 한국 측에선 외교부를 중심으로 통일부와 청와대 국가안보실, 주미 한국대사관 관계자들이 참여했고, 미국 측에선 국무부와 재무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주한 미국대사관 인사들이 참석했다.
이 본부장은 “남북 관계와 북핵 문제에 대한 모든 사안이 논의됐다”면서 “의제별로 균형 잡히고 충분한 토의를 가졌다”고 설명했다. 또 남북이 11월 말∼12월 초에 갖기로 했던 남북 철도 착공식과 관련해 “올해 안으로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이 남북 철도 공동조사 사업에 강력한 지지를 표명했는데도 착공식 일정을 결정하지 못한 것은 미국의 견제심리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 본부장은 북·미 고위급 회담 일정과 관련해 “미국과 북한이 서로 협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선 “미국은 계획대로 내년 초로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