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현 북·미 간 협상 교착 상태를 “과거처럼 전쟁을 하느냐 마느냐의 교착이 아니라 합의문을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만들어진 교착 상태”라며 “북·미 양측이 기본적으로 합의를 이루기 위한 집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전 장관은 21일 서울 중구 LW컨벤션센터에서 국민일보와 경제·인문사회연구회(경인사연) 등이 공동 주최한 ‘평창 동계올림픽 성과와 과제’ 세미나 기조연설에서 “현재 북·미 간 협상이 교착돼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불안한 측면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하지만 그 교착을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며 “지금은 과거 투닥거리다가 합의되면 좋고, 안 되면 결렬로 끝내면 그만인 상황이 아니라 성공적인 합의를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만나기 전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전 장관은 한반도 비핵화 작업은 계속 진행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교착 상태 때문에 비핵화가 안 되는 건 아니다”며 “북한은 이미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고 동창리 미사일 기지를 다 뜯어내다가 미국의 상응조치를 요구하며 잠시 중단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추가 진행을 위해 진통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전 장관은 남북 관계가 북·미 비핵화 속도보다 앞서 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민간 분야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북·미 협상 진전 속도에 남북 관계도 맞춰 달라고 요구하지만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관계가 앞서 나갔기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됐다”면서 “미국의 요구는 놀부 심보다. 엉뚱한 얘기”라고 비판했다. 이어 “지금까지 남북 관계가 끌고 왔는데 이제 와서 손발을 묶고 가자는 것이냐고 미국에 물어야 한다”며 “남북 간 기본 협력, 인도주의적 협력에 대해서도 미국이 우리에게 맞춰 달라고 하면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시민단체와 지방자치단체가 정부와 미국에 항의해야 정부도 협상 동력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이 전 장관은 남북 관계 개선과 비핵화를 통해 남측 5000만명, 북측 2500만명, 중국 동북 3성 1억1000만명에 러시아 연해주를 합쳐 2억 인구를 대상으로 북방경제권을 창출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의 핵 개발 때문에 동북 3성은 가장 저개발된 지역”이라며 “평창올림픽 마중물에서 시작돼 모두가 평화를 만나고 경제 발전을 하는 시대가 역사의 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평창올림픽이 분단 73년 만에 처음 있는 역사적 전환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대남 특사 파견,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의 대북 특사단 파견을 통해 김 위원장의 핵·미사일 개발 중단 및 북·미 정상회담 수락 의사를 받아냈다고 설명했다.
성경륭 경인사연 이사장은 “한반도가 지정학적 위치 탓에 늘 종속적으로 움직였으나 평창올림픽을 통해 한반도의 운명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며 “미래 모든 중요한 단계마다 한국의 의지만으로 풀기 어려운 취약한 구조를 어떻게 돌파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연철 통일연구원장도 “평창올림픽을 통해 한반도 질서 속에서 한국의 역할이 강화되고, 한반도 정세 개입 능력도 확대됐다”고 평가했다. 성 이사장은 “평창올림픽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필요하다는 이낙연 국무총리의 제안이 있었다”며 세미나 성사 배경을 설명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