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격차가 11년 만에 가장 커졌다. 저소득층이 월 132만원을 벌 때 고소득층의 수입은 월 974만원을 기록하고 있다. 소득 격차의 원인은 유감스럽게도 소득주도성장 ‘3대 정책’의 실패에 있다. 일자리 늘리기 정책의 수혜가 고소득층에 쏠리면서 극빈층 근로소득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줄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중산층 자영업자의 사업소득은 4년 만에 급감했다. 기초연금, 아동수당 등 현금성 복지지원은 되레 저소득층보다 중산층 이상의 소득을 늘렸다. 문재인정부가 1년6개월 만에 받아든 ‘뼈아픈 성적표’다.
통계청은 22일 ‘2018년 3분기 가계동향조사(소득부문) 결과’를 발표하고 균등화 처분가능소득의 5분위 배율이 5.52배라고 밝혔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5.52배) 이후 최고치다.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상위 20%와 하위 20%의 소득을 비교한 것이다. 배율이 높을수록 소득 양극화가 심함을 뜻한다.
소득 양극화의 배경에는 일자리 정책의 실패가 자리 잡고 있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며 출범했지만 올해 취업자 수 증가폭은 곤두박질쳤다. ‘괜찮은 일자리’인 상용직보다 임시·일용직 일자리가 먼저 사라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3분기 1분위(소득 하위 20%) 가구의 평균 취업자 수는 0.69명이다. 지난해 3분기(0.83명)와 비교해 16.8% 줄었다. 이와 달리 5분위(소득 상위 20%) 가구의 평균 취업자 수는 2.07명으로 1년 새 3.4% 늘었다. 취약계층의 일자리는 없어지는데 고소득층 일자리는 증가하는 것이다.
일자리는 곧바로 소득에 영향을 준다. 3분기에 1분위 가구의 근로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22.6% 감소했다.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이다. 반면 5분위 가구의 근로소득은 11.3% 증가했다. 올 들어 3분기 연속으로 두 자릿수 인상률이다. 3분기 연속 두 자릿수 인상은 처음 있는 일이다.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도 소득 격차를 키웠다. 과당 경쟁에 최저임금 인상 여파까지 겪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소득이 급격하게 줄었다. 1·2분위(소득 하위 40%) 가구의 사업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3.4%, 1.5% 감소했다. 특히 중산층이라고 볼 수 있는 3분위(소득 하위 40∼60%) 가구의 총소득은 2.1% 늘었지만, 이 가운데 사업소득은 11.9%나 줄었다. 사업소득 감소폭은 2014년 4분기(-12.4%) 이후 약 4년 만에 가장 크다. 자영업 위축이 저소득층을 넘어 중산층 소득까지 끌어내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저소득층을 위한 정부의 ‘돈 풀기’는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세금을 투입해 취약계층의 소득을 늘리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올해 9월부터 소득 하위 70%인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을 25만원으로 올렸다. 같은 달부터 만 6세 미만 아동이 있는 가구에 아동수당(월 10만원)도 주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정책이 저소득층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기초연금, 아동수당 등의 지원금을 나타내는 이전소득은 1·2분위(소득 하위 40%) 가구보다 3·4분위(소득 상위 40%) 가구에서 더 증가했다.
정부는 기초연금 인상이 비교적 고령층이 많은 1분위 가구의 소득 증가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일률적으로 모두에게 25만원을 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효과는 미미했다. 오히려 1분위 가구의 이전소득은 일자리를 잃어 받은 실업수당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동수당도 저소득층보다 아이가 많은 중산층 이상 가구의 소득을 늘렸다. 저소득층이 도리어 ‘정책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정부 정책은 실패하고 있지만 국민이 국가에 내야 할 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세금, 공적연금, 사회보험 등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비소비지지출은 올 3분기에 역대 처음으로 월평균 100만원을 돌파했다.
박상영 통계청 복지통계과장은 “고용 악화와 내수 부진으로 저소득 가구의 소득이 계속 감소하고 있다”며 “9월부터 실시된 기초연금과 아동수당 정책의 효과도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