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망명을 희망하는 중앙아메리카 출신 이민자 행렬(캐러밴·Caravan)을 둘러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미 연방법원의 대립이 급기야 삼권분립의 핵심인 사법권 독립 문제로까지 번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민자 유입을 제한하는 정책에 제동을 건 연방법원 판사는 물론 이 판사를 옹호한 미 연방대법원장까지 공격하고 나선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트럼프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존 티거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 판사를 “오바마 판사”라며 “그의 판결은 수치스럽다(disgrace)”고 말한 데서 비롯됐다. 티거 판사는 이민자들의 망명 신청을 거부하겠다는 행정조치에 잠정 중단 명령을 내린 인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이런 판결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며 “우리는 대법원에선 이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은 이에 대해 성명을 내고 “오바마의 판사, 트럼프의 판사, 부시의 판사, 클린턴의 판사란 없다”며 “국민의 평등권을 위해 노력하는 헌신적인 판사들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사법 독립에 감사해야 한다”고 맞대응했다. 연방대법원장이 대통령 발언에 적극 반박한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 게다가 로버츠 대법원장은 공화당 출신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임명했다는 점에서 그의 성명은 더욱 주목받았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미안하지만 존 로버츠 대법원장, 당신들에겐 정말 ‘오바마의 판사들’이 있다. 그들은 미국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들과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고 재반박했다. 이어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이 판결을 통해 행정부와 다른 시각을 수차례 보여줬다며 “그 법원이 정말 ‘독립적인 사법부’였으면 좋겠다”고 비꼬았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주장과 어긋나는 판결이 나올 때마다 사법부에 불만을 표출해 왔다. 하지만 그가 사법부의 수장까지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은 사법부 독립을 훼손하는 처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칼 토비아스 리치먼드대 법과대학원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미국 현대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라며 “로버츠 대법원장이 사법권 독립을 언급한 건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민자들의 미국 유입 저지를 위해 무력 사용을 감행할 태세까지 보이고 있다. 백악관은 멕시코와의 남부 국경에 배치된 현역 군인 5900명에게 필요시 ‘치명적 물리력(lethal force)’ 행사와 일부 사법 집행을 승인했다. 치명적 물리력이란 보통 총기 사용을 포함한 무력행사를 의미한다.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이 서명한 정부 지시(cabinet order)에 따르면 국경수비대 보호를 위한 군사적 활동이 국방부 소속 군 병력에게 허용됐다고 군사전문매체 밀리터리타임스가 보도했다. 군사적 활동에는 ‘힘의 과시 또는 사용(필요시 치명적 물리력 포함)’ ‘군중 통제’ ‘일시적 구금’ ‘간단한 수색’이 포함됐다.
이 때문에 미 정부가 군 병력에게 총기 사용을 용인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불거졌다. 그러나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국경에서 치명적 물리력 사용은 없을 것”이라며 “군 병력은 총을 소유하고 있지도 않다. 무기는 전혀 개입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불법 입국자는 방패와 곤봉으로 대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878년 제정된 연방민병대법(The Posse Comitatus Act)은 군 병력을 국내법이나 정책 집행에 사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백악관의 지시는 이 법률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미 법률전문가들은 주장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