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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수 “수동적인 여성에게는 아무런 매력을 못 느껴요” [인터뷰]

28일 개봉하는 ‘국가부도의 날’에서 소신 있는 경제전문가 한시현 역을 맡은 김혜수. 그는 “이 영화를 통해 IMF를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들이 ‘우리의 엄마 아빠, 혹은 우리가 꼰대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순간을 이겨내고 우리를 지켜냈구나’라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제공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IMF 총재(뱅상 카셀)에게 반론을 제기하는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최대한 빨리 국민들에게 알리셔야 합니다. 이렇게 감추기만 하다가 나중에 일 터지면 그때 그냥 당하기만 하는 사람들은 어쩝니까?”

영화 ‘국가부도의 날’(감독 최국희) 속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은 애타게 소리친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여자가 어디서” 따위의 말뿐이다. 국가부도까지 남은 시간은 단 일주일. 나라 경제가 망해가고 있는데 정책 결정권자들은 대책 없이 덮어두기에 급급하다.

“시나리오가 흥미로웠어요. 일반적으로 말하는 ‘재미’와는 다른 종류의 느낌이었지만요. 막연하게 ‘IMF(국제통화기금) 직전 일주일은 얼마나 드라마틱했을까’란 생각을 했어요. 출연 결정 여부보다 선재됐던 감정은, 이 영화는 꼭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정말 ‘잘’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배우 김혜수(48)가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다룬 ‘국가부도의 날’에 합류한 배경에는 어떤 사명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처음 다짐했던 목적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 영화가 우리의 경험과 의견,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매개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영화는 여러 인간 군상을 통해 그 시대의 단상들을 재현해낸다. IMF 구제금융 협상의 실질적 주도권을 쥐고 한시현과 대립하는 재정국 차관(조우진)은 연줄이 있는 정재계 인사들에게만 상황을 귀띔하고, 능력 있는 금융맨(유아인)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큰돈을 벌어들인다. 중소기업 사장(허준호)은 정부의 발표만 믿고 있다 절망적인 상황에 내몰린다.

김혜수는 “나는 IMF를 겪은 세대인데도 이렇게나 몰랐나 싶었는데, 촬영을 하면서 왜 많은 사람들이 모를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됐다”며 “이 영화는 단지 ‘우리가 이렇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는 걸 보여주는 데에 그치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유효한 메시지를 던져준다”고 했다.

영화의 중심을 담당한 김혜수는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전작 ‘좋지 아니한가’(2007)를 함께했던 유아인에 대해서는 “그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며 뿌듯함을 느낀다. 여성 캐릭터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배우는 많지만 실제로 힘을 보태는 건 별개의 문제다. 한데 유아인은 안전한 길을 마다하고 이 작품을 택했다. 그이기에 가능한 행보”라고 칭찬했다.

극에 강렬한 긴장감을 불어넣은 조우진에게는 “정말 좋은 배우”라는 찬사를 쏟아냈다. “혼자만 잘하는 배우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조우진씨는 함께 잘할 수 있는 에너지를 무궁무진하게 발현해줘요. 스마트한데다 철저한 준비와 노력까지 하죠. 그런 배우와 함께 연기하는 건 제게 굉장히 소중한 순간이었어요.”

IMF 총재 역을 맡은 프랑스 배우 뱅상 카셀의 합류는 배우들에게조차 놀라운 일이었다고. 김혜수는 “섭외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작품이 하고자 하는 얘기에 흥미를 느껴 참여하게 됐다더라. 그가 지닌 카리스마는 압도적이었다. 대사의 행간까지 찾아내 빈틈을 메워주었다”고 감탄했다.

김혜수는 주체적이고 당당한 여성상의 표본으로 통한다. 영화 ‘도둑들’ ‘차이나타운’, 드라마 ‘직장의 신’(KBS2) ‘시그널’(tvN) 등 전작에서 줄곧 그런 캐릭터를 연기해 왔다. 이번 작품에선 “위기에 맞서는 여성 투사”를 그리기보다 “본분에 따라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게 김혜수의 말이다.

“여성 캐릭터가 극을 이끌어가는 주체가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다만 그 인물이 주체성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하죠. 엄청난 담론을 제시하는 작품이 아닌 이상 저는 수동적인 여성에 대해선 아무런 매력을 못 느껴요.”

그의 이런 신념이 여성 배우들의 입지를 넓혀 나가는 디딤돌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같은 길을 걷는 동료 배우들이 있잖아요. 우리끼리 느껴지는 끈끈한 유대감이 있어요. 당장 결실을 맺지 못하더라도 꾸준히 노력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시도는 유의미하니까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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