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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권남용 스모킹 건, ‘판사 블랙리스트’와 법원 수뇌부의 서명



검찰이 지난 6월 ‘사법농단 의혹’ 수사를 시작한 지 5개월 만에 확보한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등의 직권남용죄를 입증할 ‘스모킹 건’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법행정권에 포함된 인사권한을 당시 사법행정 수뇌부가 남용한 결정적 물증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양 전 대법원장을 향한 검찰 수사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사법농단 의혹’을 촉발한 것은 판사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의혹이었다. 지난해 2월 이탄희 판사는 법원행정처 심의관에 발령된 후 이규진 당시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부터 판사 동향 리스트를 관리해야 한다는 지시를 받았다. 이 판사는 이에 반발, 사표를 내겠다고 했고 이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사법농단 의혹이 공론화됐다. 하지만 이후 세 차례에 걸친 대법원 자체 조사는 헛수고로 끝났다. 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이 “인사상 기밀에 속하거나 인사상 정보가 드러날 위험성이 있다”며 인사자료 공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검찰이 지난 6일 행정처를 압수수색하면서 의혹으로만 존재했던 법관 인사 불이익 검토 정황의 실체가 드러났다. 검찰이 확보한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보고서’에는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행정 방침에 비판적 태도를 보인 법관 10여명의 명단이 들어 있었다. 이들이 명단에 오른 이유는 성추행·음주운전처럼 누가 봐도 명백한 ‘물의’가 아니었다. 법원 내부게시판에 당시 사법행정 방침에 대한 비판적 글을 올린 행위 등이 이유가 됐다. 문건에는 이들을 지방 전보시키거나 해외법관 파견 자격을 박탈하는 등 인사 불이익을 실행한 정황도 고스란히 담겼다.

검찰은 특히 이 문건에 양 전 대법원장과 박·고 전 처장,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의 자필 서명이 명기된 점을 주목하고 있다. ‘양승태 사법부’ 수뇌부가 명백한 직무 권한을 행사한 부분으로 볼 수 있어 직권남용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가 된다는 판단이다. 검찰 관계자는 22일 “문건에 불합리한 근거에 의한 인사 불이익 사유가 명기돼 있는 만큼 법관 인사 불이익 건은 직권남용 혐의를 피해가기가 어렵다”고 했다.

검찰은 현재 2014∼2017년 4년치 문건을 확보한 상태다. 당초 검찰은 압수 범위를 양 전 대법원장 재임기로 삼았으나 법원이 2014년 이후 자료에 국한해 영장을 발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추후 2014년 이전 법관 인사 불이익 관련 자료도 확보할 방침이다.

해당 기간 행정처 수장이었던 박 전 처장과 고 전 처장은 이미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됐다. 검찰은 이날까지 세 차례 소환 조사한 박 전 처장에 이어 23일 고 전 처장을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검찰은 이들이 법관사찰을 비롯한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의사결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사실상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박 전 처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도 저울질하고 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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