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과 영국이 25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특별정상회의를 열고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합의문에 공식 서명했다. 영국은 1973년 유럽경제공동체(EEC·EU의 전신) 가입 46년 만인 내년 3월 29일 EU를 탈퇴하게 된다.
EU 특별정상회의는 이날 오전 영국을 제외한 27개 회원국이 먼저 모여 브렉시트 합의문과 함께 브렉시트 이후 양측의 무역·안보협력·환경 등 미래 관계 가이드라인을 담은 ‘미래 관계 정치선언’을 승인했다. 이어 EU 집행위원회의 장-클로드 융커 위원장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합의문에 공식 서명했다. 이에 따라 브렉시트 합의문은 영국과 EU 의회에서 비준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EU 지도자들은 사상 첫 회원국 탈퇴라는 아픈 역사를 쓴 데 대해 “오늘은 슬픈 날”이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융커 위원장은 “영국의 탈퇴를 보는 것은 비극”이라고 말했다. 마르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는 “승자는 없고, 모두가 패자”라고 했다. EU를 대표해 협상을 이끌어온 미셸 바르니에 EU 수석대표는 “(브렉시트 이후에도) EU와 영국은 동맹이자 파트너이자, 친구로 남을 것”이라며 “동반자 관계 구축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EU와 영국의 브렉시트 합의문이 12월 영국 의회에 이어 내년 2∼3월 중 EU 의회에서 각각 비준되면 양측은 브렉시트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2년의 이행기간을 가지게 되며, 필요 시 이행기간을 최장 2년 한 번 더 연장할 수 있다. 다만 영국은 이행기간 EU의 법률과 규칙을 따라야 하고 재정분담 책임도 지지만 정책 결정에는 개입할 수 없다.
이와 함께 영국은 회원국 시절 약속한 재정기여금 390억 파운드(약 57조원)를 수년에 걸쳐 EU에 ‘이혼 합의금’으로 내야 한다. 가장 큰 쟁점이던 브렉시트 이후 아일랜드와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 간 국경 문제는 ‘하드보더’(국경 통과 시 통행과 통관 절차를 엄격히 적용하는 것)를 피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영국 전역을 EU 관세동맹에 잔류시키기로 했다. 이 문제는 2020년부터 다시 논의한다. 막판에 쟁점으로 떠오른 영국령 지브롤터 문제는 차후 논의 과정에서 스페인에 발언권을 주기로 했다.
내년 2∼3월 열릴 EU 의회는 이변이 없는 한 합의문을 비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12월 중순 영국 의회의 비준 여부다. 통상 관계, 지브롤터 영유권 문제 등 민감한 사항을 2019년 3월 29일 브렉시트 이후 협의하기로 미룬 상황에서 영국 의회가 브렉시트 합의문을 비준할지 미지수다. 당장 영국 의회의 비준을 받지 못하면 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탈퇴하는 이른바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돼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메이 총리는 이날 “이번 합의안이 최선으로 재협상은 이제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일부 영국 국민과 EU 지도자들이 브렉시트에 슬픔을 느낄 수 있지만 나는 슬프지 않다”면서 “영국은 EU 밖에서 앞을 향해 전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영국에선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반대 여론이 훨씬 우세한 상황이다. 그만큼 의회 비준을 장담하기 어렵다. 야당인 노동당은 물론 집권 보수당 내 강경파, EU 잔류파, 연정 파트너인 북아일랜드의 민주연합당(DUP) 모두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안에 반발하고 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