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가보셨나요?"
2015년 11월 25일 광주 광산동 옛 전남도청 부지에 아시아 최대 복합문화시설로 문을 연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문화전당)이 개관 3주년을 맞아 도약의 나래를 펴고 있다. 아시아 문화 교류와 창작·교육·연구·전시·공연을 전담하는 문화발전소로 개관한 문화전당은 각국의 문화상품이 활발히 유통되는 문화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있다.
2005년 말 국제 공모에서 당선된 건축가 우규승의 ‘빛의 숲’을 기반으로 건설된 문화전당은 주요 구조건축물 90%가 지하에 들어선 특이한 구조다. 지하를 굴착한 뒤 드넓은 건물이 들어섰고 지상은 아시아문화광장, 열린마당, 하늘마당 등으로 대부분 공원화됐다.
우뚝 솟은 기념비적 건물보다는 광주의 상징 무등산의 이미지에 걸맞게 낮은 건축을 추구했다. 무등은 ‘등급을 매기지 않는다(無等)’는 의미다. 부지 면적 13만5000㎡, 연면적 16만1237㎡로 국립중앙박물관(13만7290㎡)보다 넓다.
광주의 심장부에 건립됐지만 이곳은 운영 주체와 예산 분담 등을 둘러싼 장기간 논란, 홍보 부족 등으로 문화예술인들만의 난해한 공간으로 인식하는 이들이 여전히 적잖다. 정치·경제는 물론 문화 분야에 이르기까지 7∼8할의 사회적 역량이 서울 등 수도권에 몰린 현실에서 문화전당은 당초 비빌 언덕 없이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문화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지방도시의 한계를 극복하고 문화전당은 아시아 문화의 집결지로 점차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동안 공연 513회, 전시 58회, 교육 1848회, 축제 97회 등 2500여회의 행사를 통해 대중에게 감미로운 문화의 향기를 뿌렸다. 민주평화교류원,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어린이문화원, 예술극장 등 주요 시설의 관람객 수는 해마다 늘어나 그동안 810만여명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어린이문화원은 ‘자연과 생활’ ‘지식과 문명’ ‘소리와 음악’이라는 3개 주제의 어린이 체험관 운영을 통해 국내 최대의 어린이 문화공간으로 떠올랐다. 이곳을 다녀간 탐방객은 2016년 60만명에서 2017년 77만명으로 늘어난 데 이어 올해는 10월 말 현재 102만명으로 급증세다.
창·제작 구심점인 아시아문화원의 손선희 과장은 “문화전당의 구동원리에 충실하되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누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오는 곳이 되려고 한다”며 “데이트를 즐기려는 젊은층과 소풍을 오는 어린이들이 점차 늘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전당은 개관 이후 294명의 레지던시 작가들이 입주해 개성 넘치는 140종의 콘텐츠를 창작하거나 제작했다. 현재도 아시아 문화예술인들이 오스트리아와 네덜란드의 유관 기관, 포항공대 창의IT융합연구소, 광주과학기술원 등 국내외 유수의 기관과 협업을 통해 4차 산업혁명에 기반한 첨단 콘텐츠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문화전당은 주한 아시아 각국 대사들과 협의해 2019년에는 제1회 아시아대사관문화제를 개최할 계획이다. 조형상징, 의식주 등 5개 대주제를 설정해 진행 중인 아시아 문화에 대한 조사·연구는 향후 100년을 내다보는 프로젝트다. 기획전시로 주목받았던 ‘아시아의 타투’ 등이 그 성과물인데 지금까지 아시아 각국의 문화를 잇는 가교이자 창(窓)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는 평가다.
앞으로 문화전당은 더욱 다채롭고 풍성한 콘텐츠로 세계적 복합 문화예술기관으로 발돋움한다는 각오다. 창의성과 다양성,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문화예술 콘텐츠 개발과 유통의 플랫폼으로 거듭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매년 600억원의 예산을 사용하는 데 비해 연간 수익은 고작 9억원 수준에 불과하다는 뼈아픈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따라 문화전당은 우선 지역사회와의 협업 창구를 넓히고 협력 사업도 강화한다는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광주시와 동구청 공무원들로 구성된 문화도시조성협력단이 지난 6월부터 상주 근무하며 협력 사업을 발굴, 추진 중이다.
옛 전남도청 복원에 따른 문화전당 외관의 변화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문화전당은 지난 8월 조선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한 복원 기본계획 용역이 나오는 대로 기본·실시설계를 거쳐 현 정부가 약속한 도청 복원 공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문화전당을 대표하는 킬러콘텐츠 개발도 절체절명의 과제다. 고심 끝에 문화전당은 한국적 시나리오와 전통 곡예·묘기에 기반한 대형 창작공연물 제작을 추진하고 있다. 4000여명이 소속된 ‘태양의 서커스’를 뛰어넘는 창작공연이 목표다. 현재 창작 밑그림이 한창인 킬러콘텐츠는 2019년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또는 2020년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행사에서 첫선을 보이게 된다.
장기적으로는 지역의 문화예술기관, 산업진흥기관, 일반시민 등이 힘을 합쳐 참여하는 문화 콘텐츠 플랫폼 아시아컬처마켓(ACM)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ACM이 출범하면 ‘세계를 향한 아시아 문화의 창’ 문화전당은 아시아인들에게 친근한 문화시설로 거듭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여전히 걸림돌도 있다. 차관급으로 직급 상향이 논의 중인 전당장이 3년째 직무대리 체제인데다 운영 조직이 문화전당과 아시아문화원으로 이원화돼 ‘옥상옥’ 체제인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문체부 소속 감독기관인 문화전당과 콘텐츠 창·제작 등 실무를 전담하는 아시아문화원의 2개 조직으로 나뉘어 신속한 의사결정과 효율적 기관 운영이 어렵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온다.
이진식 아시아문화전당장 직무대리는 “아시아는 무궁무진한 역사적 스토리와 문화적 원천 자원이 넘실대는 문화의 보물창고”라며 “문화를 향유하고 유통시키는 합리적 역량을 농축해 아시아의 한계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발전소로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이기표 아시아문화원장
“당장 관객 늘리기보다 흡인력 갖춘 세계적 문화상품에 초점”
“화제성과 대중성에 더해 예술성까지 접목하는 황금비율을 찾고 있습니다. 문화예술 교육과 인력 양성이라는 본연의 기능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민주·인권·평화의 도시 광주의 정서를 오롯이 반영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운영 주체인 아시아문화원 이기표(57·사진) 원장은 27일 “문화전당이 광주에서 문을 열었지만 그동안 지역민들로부터 환대를 받지 못했다”며 “조직 개편을 통해 민주평화교류팀을 센터로 승격하고 그 안에 지역협력팀을 신설해 지역민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준정부 기관인 아시아문화원은 현재 4본부 1연구소 1센터 18개팀에 240여명이 근무 중이다.
“10여명의 석·박사가 포진한 아시아문화연구소가 심혈을 기울여 아시아 문화의 시대적 맥락과 편린을 집약하면 창·제작센터가 융복합 콘텐츠로 만들어내는 게 첫걸음입니다. 그 결과물을 문화상품으로 포장해 아시아와 지구촌에 유통·보급하는 게 주된 임무입니다.”
이 원장은 “두뇌집단인 아시아문화연구소를 활성화시켜 문화전당 설립 이념과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는 콘텐츠를 선보이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3년간 관람객 통계를 집계해본 결과 창작물 공연을 무대에 올렸을 때 항상 관람객이 적었는데 그 이유가 관객들이 느끼기에 어렵고 낯설고 생경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장 관객을 늘리는 눈앞의 성과보다 흡인력을 갖춘 세계적 문화상품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단순 대관이 필요하다면 문화전당이 아니어도 될 것입니다. 문화전당만이 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창작 공연물을 선보이되 문턱을 낮춰 누구나 올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이 원장은 “5·18 광주정신을 훌륭한 콘텐츠로 다듬어내는 것도 구상하고 있다”며 “문화산업을 육성하는 차원에서 문화전당과 인접한 양림동, 동명동을 묶어 문화벨트화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에 통하는 일류 콘텐츠를 만들려면 쇼케이스와 트라이아웃 등 기본적으로 5년 정도가 걸립니다. 장기적으로 5월(MAY)을 주제로 문화전당을 대표할 만한 국제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대학원도 설립할 것입니다. 아시아 문화의 다채로운 정보를 축적하는 ‘아카이브 100년 프로젝트’와 옛 전남도청 복원사업은 내년에 가시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광주일보와 광주방송(KBC)에서 언론인으로 30년 동안 잔뼈가 굵은 이 원장은 광주대 교수를 거쳐 지난 4월 제2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