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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이흥우] 첫눈



지난 주말 전국 곳곳에 올겨울 첫눈이 내렸다. 지난해에 비해서는 이레, 평년보다 사흘 늦은 눈이다. 첫눈 치고는 양이 제법 많아 1981년 이후 가장 많은 첫눈이라고 한다. 눈은 북한에도 내려 노동신문은 25일자 신문에 ‘평양에 첫눈이 왔다’는 제목의 글과 사진을 싣고 “설경이 펼쳐진 대동강변에 기쁨의 웃음이 넘쳐난다”고 평양의 ‘눈맞이’ 풍경을 전했다. 첫눈을 맞는 설렘은 남이나 북이나 다르지 않았다.

첫눈은 사랑의 눈이다. 눈을 기다리며 ‘첫눈 오는 날 ○○서 만나자’고 약속한 연인들이 숱했으리라. 첫눈은 추억의 눈이다. 소복소복 내리는 첫눈을 바라보며 아련한 옛사랑을 떠올린 이들 또한 숱했으리라. 이문조의 시, ‘첫눈 오는 날 우리 만나자’는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이런 기억의 조각들을 소환한다. “첫눈 첫사랑 첫 키스 첫 경험/ 처음만큼 설레는 것도 없다/ (중략)/ 첫눈 오는 날 우리 만나자는 그 약속/ 아직도 유효한지/ 달려가고만 싶은 소년의 마음/ 설레는 첫사랑의 추억”

하지만 모두에게 설레는 첫눈은 아니었다. 기상청은 첫눈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기상청은 당초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의 예상 적설량을 1∼3㎝로 예보했으나 실제로는 예보치의 세 배 가까운 8.8㎝가 내려 ‘오보 기상청’이라는 오명을 또 한 번 들었다. 이미 개장했거나 개장을 앞둔 스키장들은 신났겠지만 SNS에는 엉뚱한 예보를 남발하는 기상청의 ‘무능’을 질타하는 글들이 빗발쳤다.

탁현민 대통령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 역시 첫눈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말한 ‘첫눈’이 마침내 오고야 말았기 때문이다. 여성비하 논란으로 야당의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탁 행정관은 지난여름 사의를 표했다. 그러나 임 실장은 “가을에 중요한 행사가 많다. 첫눈이 오면 놓아주겠다”고 사의를 반려했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떠나간 첫사랑도 돌아온다는 첫눈이 내렸다. 첫눈이 내리면 놓아준다던 청와대 쇼 기획자는 어떻게 처리할지 지켜보겠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임 실장도 첫눈의 소회를 남겼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하얗게 쌓인 눈을 보면서 엉뚱하게 만주와 대륙을 떠올렸다. 올해 안에 남북 철도 연결 착공식이 가능할 것”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탁 행정관 거취에 대한 언급은 없다. 임 실장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내 눈이 내리지 않기를 바랐는지 모르겠다.

이흥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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