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으로 불혹(不惑), 잡다한 세상일에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나이의 이동국이 다음 시즌에도 그라운드를 밟는다. K리그 최고 노장으로서 자신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새로운 기록이 되는 반열에 오른 그다. 차분하고 묵직한 ‘라이언 킹’ 이동국의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전북 현대는 이동국과 1년 재계약을 체결했다고 26일 발표했다. 전북은 “내년 시즌에도 이동국의 존재가 필요하다”며 “레전드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차기 감독 선임에 앞서 재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이동국은 2009년 전북과 연을 맺은 이후 11년째 녹색 유니폼을 입게 됐다.
이동국은 K리그가 키워낸 프랜차이즈 스타다. 1998년 포항에 입단한 이동국은 데뷔 첫해에만 24경기에 나와 11골을 터뜨리며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데뷔 초 안정환, 고종수와 함께 실력과 개성을 겸비한 K리그 트로이카로 축구 열풍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후 커리어의 대부분인 20여년을 K리그에서 보냈다.
기록에서 드러나는 이동국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K리그 소속으로 215골을 넣어 역대 최다 득점자에 올라 있다. 그가 터뜨리는 모든 골은 그 자체로 새로운 역사다. 도움 순위로 따져도 75도움을 기록, 염기훈(수원 삼성·103도움)에 이은 2위다. K리그에서 신인상(1998년)과 득점왕(2009년), 도움왕(2011년)을 모두 수상한 선수는 이동국이 유일하다. 올 시즌에만 13골을 터뜨리며 외인 용병을 제외한 국내 공격수 가운데 가장 많은 골을 넣었다.
눈에 보이는 지표 외에도 전북에서 이동국이 맡고 있는 역할은 많다. 최고참 선수답게 안팎으로 리더십을 발휘하며 선수단이 하나로 뭉치도록 이끈다. 팀 내 베테랑을 존중하겠다는 전북의 지향점을 상징하는 선수이기도 하다. 백승권 전북 단장은 “이동국은 전북에서 개별 선수 그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며 재계약 이유를 설명했다.
K리그 불멸의 스타인 이동국이지만, 이상하게도 최고의 무대인 월드컵에서는 리그에서만큼 빛을 발하지 못했다. 4강 신화를 이룬 2002 한·일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성실하지 않고 경쟁력이 약하다”는 평을 듣고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기량이 만개했던 2006 독일월드컵을 코앞에 두고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며 낙마했다. 어렵게 출전한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는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살리지 못하며 극심한 비판에 시달렸다. 그러나 몇 장면만으로 그의 국가대표 20년을 평가절하하기는 어렵다. 성인 대표팀과 올림픽·청소년 대표팀을 바쁘게 오가며 143경기 59골을 넣은 이동국은 누구보다 헌신적이었다.
축구계에서는 이동국에게 따라붙었던 ‘게으른 선수’라는 비판도 적절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활동량이 많은 공격수로서 이토록 오래 경기에 나서는 것 자체가 그의 성실함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까지 통산 503경기 출장한 이동국은 K리그 역사상 필드 플레이어 중에서는 가장 많이 뛴 선수가 됐다. 이동국보다 많이 출전한 선수는 활동 반경이 제한적인 골키퍼 김병지(706경기)와 최은성(532경기)밖에 없다.
장수 비결 중 하나는 이동국의 타고난 신체조건이다. 쉽게 다치지 않고, 다치더라도 금방 나을 정도로 회복 속도가 빠르다. 이동국은 전북에 온 이후에도 장딴지를 5번 정도 다쳤다. 일반적으로는 완치에 6∼8주가 걸리는 부상이었지만, 이동국은 2∼3주 만에 털고 일어났다. 전북 관계자는 “신체조건도 남다른 데다 워낙 자기관리를 잘하는 편이라 회복이 빠르다”고 했다.
전북의 아낌없는 투자도 이동국의 롱런을 도왔다. 전북은 브라질 출신의 스포츠 물리치료사 지오반과 김재오, 김병선, 최지훈 트레이너로 이뤄진 전문 의료팀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선수의 몸 상태를 고려한 개인 맞춤형 프로그램을 개발·실행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시킨다. 클럽 하우스 안에 수중치료기를 구비해 물속에서 회복 훈련을 하는 등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도 갖췄다.
프로 생활을 이어나가게 된 이동국은 감사 인사를 전하며 도전 의지를 드러냈다. 이동국은 이날 “남은 선수 생활을 전북에서 계속할 수 있게 돼 기쁘다”며 “전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쏟아내고 팀의 위상을 더욱 높이겠다”고 말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