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연내 서울 방문이 늦춰질 가능성을 처음 언급했다. 김 위원장의 연내 답방은 지난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회담 성과로 직접 발표한 사안이다. 연말 굵직한 북핵 이벤트로 남아 있던 남북 정상회담과 종전선언 모두 내년 이후로 미뤄지는 분위기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6일 정례브리핑에서 “김 위원장의 연내 답방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논의 중”이라며 “2차 북·미 정상회담 전이 좋을지 후가 좋을지 어떤 게 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는 데 효과적일지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 5일 여야정 상설협의체 첫 회의에서 “연내 이뤄진다는 것을 가정하고 준비한다”고 밝힌 것과는 온도차가 있다.
김 대변인은 북·미 고위급 회담이 11월 중 열리기 어렵다는 관측에 대해 “우리가 11월에 열린다고 한 적이 없다”며 “언론이 예측했다가 또 안 된다고 하고 있어서 지켜보는 중”이라고 했다. 이달 북·미 고위급 회담 재개 여부는 내년 초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가늠하는 잣대로 평가됐다. 그러나 11월이 거의 다 가도록 고위급 회담 소식이 없자 청와대가 일정 조정 필요성을 내비친 것이다. 그는 연내 종전선언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만의, 또 남북 결정만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남·북·미 3자가 다 합의를 해야 하는 것”이라며 “그 목표를 위해 여전히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연내 종전선언은 4·27 판문점 선언에 담겨 있다.
그동안 청와대와 정부에선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지지부진한 북·미 대화를 촉진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미국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시기를 내년 초로 미룬 뒤에도 청와대가 연내 답방을 계속 추진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부 소식통은 “연말까지 한반도 평화 구상을 되돌릴 수 없는 수준까지 진전시키겠다는 게 정부 목표였는데 북·미 대화가 주춤하면서 수정이 불가피해졌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등 비핵화 협상과 연관된 주요 일정들도 모두 내년 이후로 미뤄진 상태다.
북한은 28일 전 고위급 회담을 열자는 미 정부 제안에 여전히 답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움직임도 포착되지 않았다. 대신 북한은 비핵화 협상이 교착된 이유가 미국에 있다는 주장을 폈다.
노동신문은 “미국은 핵 문제가 조·미 관계 개선의 걸림돌인 것처럼 운운하지만 설사 그것이 풀린다고 해도 인권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등 새로운 조건들을 내들며 우리 체제를 바꿀 것을 강박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신보는 미국의 비핵화 속도조절 발언을 겨냥해 “협상의 판을 깨지 않으면서 상황 관리에 초점을 맞추는 트럼프식 ‘전략적 인내’로 선회하는 징조”라며 “대화 상대에 대해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전략적 인내는 제재를 유지하면서 북한의 붕괴를 기다리겠다는 것으로,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