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흑해 해상에서 2014년 크림반도 사태 이후 4년 만에 충돌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즉각 전시내각을 소집하고,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번 충돌이 더욱 악화되지 않을까 예의주시하고 있다.
BBC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양국 간 해상 충돌은 25일 오후(현지시간) 흑해와 아조프해를 잇는 케르치 해협에서 발생했다. 흑해 오데사항을 출발해 아조프해 마리우풀항으로 가려던 우크라이나 해군 소속 군함 2척과 예인선 1척이 케르치 해협에서 러시아군과 충돌했다. 러시아군은 경비함과 특수부대, 전투기 2대까지 동원해 우크라이나 선박 3척을 나포하고 선원 23명을 억류했다. 우크라이나 해군은 이번 상황으로 자국 군인 6명이 다치고 일부는 생명이 위독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 측 인명 피해가 경상 3명뿐이라고 발표했다. 러시아 측 피해는 알려지지 않았다.
케르치 해협은 크림반도 동쪽에 위치한 길이 41㎞, 너비 4∼15㎞의 해협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2003년 케르치 해협에서 자유항행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조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케르치 해협 등 인근 해역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5월 해협 위에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인 케르치 대교를 개통했다. 러시아는 이번 충돌 직후 케르치 대교 하단의 선박 통행로를 유조선으로 가로막아 해협을 봉쇄했다가 이튿날인 26일 새벽에 풀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사태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고 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성명에서 “우크라이나 함선이 임시 폐쇄된 러시아 영해를 불법 침입했다”면서 “이번 사건이 지역에서 분쟁 상황을 유발하려는 우크라이나의 도발적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측은 항해 계획을 러시아 측에 사전 고지하는 등 적법한 절차를 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러시아가 미친 짓을 벌였다”고 비난했다. 포로셴코 대통령은 전시내각을 소집한 뒤 향후 60일간 계엄령을 선포하는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의회에 요구했다. 충돌 사실이 알려지자 키예프 주재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항의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군사적 긴장이 2014년 이후 최고도로 고조되자 국제사회는 양측에 자제를 촉구했다.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이 불법적이었음을 강조하며 우크라이나 측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 요청에 따라 26일 오전 11시(한국시간 27일 오전 1시)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미국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양국 간 충돌 이후 트위터에 “유럽은 방위비 분담금을 공평하게 내야 한다”면서 “EU는 미국과의 무역에서 이익을 보면서도 나토 방위공약은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나토 회원국들이 방위비 분담금을 제대로 내지 않아 이번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