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미 전 숭실대학교(교회음악과) 교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CCM 가수다. 그의 목소리는 특별하다. 전 세계 50만명의 관람객을 공연장으로 이끈 매력적인 목소리이자 6장의 정규앨범을 내고 총 200만장을 팔아치운 밀리언셀러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또 한국 CCM 아티스트 최초로 뉴욕 카네기홀 무대를 빛낸 기독 문화계의 보석 같은 목소리다.
오는 13∼16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데뷔 30주년 콘서트를 여는 그를 지난 29일 서울 대학로 ‘작은극장 광야’에서 만났다. 사람들이 찬사를 보내는데도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뽐내지 않았다. 오히려 목소리는 자신의 가장 약한 곳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담는 보잘것없는 그릇에 불과하다고 했다.
신앙심으로 불타던 초등학생
그는 모태신앙인이 아니다. 아버지는 원불교, 어머니는 기독교 집안 출신이었다. 평소엔 화목했지만 제사 때가 되면 곧잘 부부싸움이 벌어졌다.
“부모님은 그렇게 사이가 좋았는데도 제삿날이 다가오면 세상이 끝날 것처럼 다투셨어요. 어릴 땐 목사 아빠를 둔 친구가 그렇게 부러웠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린이전도협회 캠프에서 예수를 영접했다. 그 캠프 마지막 날 리빙스턴 선교사의 삶을 보고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다짐했다.
어렸지만 신앙심이 뜨거웠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1980년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복음 집회를 좀 더 가까이에서 보려고 전날부터 어머니와 이불을 싸 들고 단상 아래서 밤을 새웠다. 어머니는 어린아이로 생각했던 딸이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침례교회를 다닐 때도 신앙심이 유별났다. 초등학생인 자신이 왜 침례를 받을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어 담임목사 방을 찾아갔다.
“목사님 방문을 두드렸어요. 그리고 제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주로 시인했으며 구원의 확신도 있는데 왜 어리다는 이유로 침례를 받을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여쭤봤어요. 당돌했지만 그만큼 믿음에 자신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담임목사는 문답 끝에 침례를 허락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6학년 때 침례를 받았다. 아버지도 같은 날 딸을 따라 모든 것을 내려놓고 믿음생활을 시작했다.
신앙심은 열정적인 말씀 공부와 찬양 사역으로 이어졌다. 어릴 때부터 악기에 익숙했던 탓인지 음악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이 소명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연세대학교 성악과에 입학했다. 그런데 목이 아팠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 기도에 매달려
“성악과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제 성대가 약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성악 시험을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87년 목에 혹이 생기고 성대 결절이 왔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의사는 선천적으로 목이 약하다며 두 달 동안 말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평생 노래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에 빠졌다. 노래하는 사람에게 사형선고와 같은 일이었다. 밝은 성격으로 친구들이 많았지만 밖에 나서지 못했다. 매일 피아노 앞에 앉아 주님께 목소리를 되찾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건강한 목소리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혹이 있는 성대로 노래를 한다. 다만 그보다 더 귀한 걸 얻었다.
“기도 끝에 하나님의 얼굴을 얻었어요. 꾀꼬리 같은 육(肉)의 목소리를 되찾는 대신 하나님은 제게 영(靈)으로 노래하는 법을 깨닫게 해주셨죠.”
아픔은 그를 겸손하되 강하게 만들었다. 노래하는 동안 자신의 목소리가 드러나지 않아도 성령이 임재하면 하나님의 손길이 어디서든 행해지는 놀라운 통로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연약한 목소리 덕분에 제가 교만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절망은 제가 주님 앞에 자연스럽게 무릎을 꿇도록 했습니다. 그러니 절망은 제게 축복이에요.”
절망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담아 ‘축복송’을 작사, 작곡했다. 대학생 때였다.
‘때로는 너의 앞에 어려움과 아픔 있지만/담대하게 주를 바라보는 너의 영혼/너의 영혼 우리 볼 때 얼마나 아름다운지/너의 영혼 통해 큰 영광 받으실 하나님을 찬양 오 할렐루야∼.’
노래는 무려 16개 이상 언어로 번역돼 세계 곳곳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제 목소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제 목소리 안에 하나님이 영을 불어 넣고 계세요. 제가 제 목소리를 뽐내면 사람들은 저를 쳐다보시겠죠. 그런데 제가 주님을 바라보고 노래하면 듣는 사람들은 저를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거예요.”
“주님께 드릴 건 오직 믿음뿐”
그제야 비로소 왜 목이 아팠는지 이해됐다. 약한 목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찬양할 수 있게 하는 하나님의 예비하심이었다. 나아가 노래는 목소리로 하는 게 아니라 믿음으로 한다고 확신하게 됐다.
“어머니는 아이가 쑥쑥 클 걸 잘 알고 키우잖아요. 노래하는 것도 같아요. 매번 무대에 올라가서 제 영혼을 어루만지고 관객석 곳곳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믿고 목소리를 냅니다.”
송 전 교수에게 무대는 곧 자신을 지우고 하나님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관객들이 자신을 주목하기보다 하나님을 만나게 되길 기도할 뿐이다.
“사람들이 송정미 콘서트를 보고 ‘송정미 참 대단하다’고 하면 그 콘서트는 실패라고 생각해요. 물론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콘서트가 끝나면 모든 관객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하며 감동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려면 무대에선 철저히 제가 죽고 그리스도가 드러나야 합니다.”
노래하는 순간이 그에겐 가장 행복하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찬양에서도 똑같이 이뤄진다고 여긴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보잘것없는 가난한 아이의 도시락을 주님께 드렸더니 주님은 축사하시고 5000명을 먹인 것처럼 자신 또한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주님 손에 건넸더니 주님이 이곳저곳에서 불가능한 일을 행하신다고 믿는다.
“제가 노래를 하고 있으면 주님이 관객들 곳곳에 계신 걸 보게 돼요. 단지 노래할 뿐인데 하나님이 오셔서 만나주시고 말씀하시고 만져주시는 거예요. 어떤 분은 잃어버렸던 기도를 다시 찾고 어떤 분은 주님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고, 또 어떤 분은 삭개오처럼 부정직하게 살다 지난날을 뉘우치는 그 순간을 저도 함께 보는 거죠. 어떻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그는 다음세대를 위한 문화사역에 매진하겠다고 대답했다.
“교회를 떠나는 젊은이들을 붙잡기 위해서라도 CCM 가수들이 노래를 더 많이 불러야 해요. 미국에선 CCM 아티스트들이 멋진 노래로 청년들을 사로잡고 있잖아요. 힘에 부치더라도 기독 문화사역자들도 시대 흐름에 맞춘 노래를 자꾸 만들어야 합니다. 아직 하나님 사랑을 전할 곳은 너무나 많아요. 저도 언제나 제 자리에서 노래 부를게요.”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