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에 출근하던 김명수 대법원장의 차량이 27일 ‘화염병 테러’를 당했다. 재판 결과에 불만을 가진 70대 남성이 대법원장을 직접 공격하기 위해 벌인 일이었다. 김 대법원장은 무사했지만, 사법농단 의혹으로 사법부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가운데 벌어진 사실상의 ‘사법부 테러’에 법조계는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다.
대법원과 서초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10분쯤 대법원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남모(74)씨가 대법원 정문을 통과하려던 김 대법원장 차량에 불을 붙인 화염병을 던졌다가 현장에서 즉시 검거됐다. 화염병은 차량 보조석 뒷바퀴 쪽으로 떨어졌고 정문을 지키고 있던 청원 경찰이 즉시 소화기로 꺼 큰 불길로 번지지 않았다. 남씨는 현장에서 청원 경찰들에게 제압당한 뒤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넘겨졌다. 경찰 조사 결과 화염병은 500㎖ 페트병에 인화물질을 넣어 만든 것으로 남씨 가방에서 4병이 추가로 발견돼 압수됐다. 경찰은 남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남씨는 경찰에서 “민사소송 사건과 관련해 (법원이) 내 주장을 받아주지 않아서 화가 나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남씨는 실제 대법원 정문 앞에서 3개월쯤 전부터 1인 시위를 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강원도 홍천에서 돼지농장을 운영하던 남씨는 2013년 유기농 쌀과 일반 쌀을 배합해 제조한 사료에 대해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친환경인증 부적합 처분을 내려 손해를 봤다며 국가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그러나 1심과 2심 법원에 이어 최근 대법원에서도 패소 판결이 확정됐다.
2010년 보수성향 단체들이 MBC 피디수첩 사건 무죄 판결에 항의하며 서울 한남동 대법원장 공관 앞에서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 관용차에 달걀을 던진 적은 있지만 생명에 위협을 줄 수 있는 테러가 대법원 청사 안에서 벌어진 것은 처음이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수원지방법원 등을 방문하는 행사를 예정대로 이어갔다. 그러나 이날 사건으로 법원 안팎은 크게 술렁였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사법부가 수사 대상이 되고 일선 법관까지 탄핵 대상으로 거론되는 것도 모자라 대법원장을 겨냥한 테러까지 발생하는 걸 보면서 이 직업을 오래 가지고 있는 것 자체에 대한 회의가 들 정도”라며 혼란스러워했다. 재경지법에 근무하는 한 판사는 “경호를 받는 대법원장이 이런 공격을 받는데 혼자 다니는 일선 판사들은 겁이 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청은 이와 관련 대법원·대법원장 공관 등 주변에 정보관을 증강 배치하고 각급 법원에 핫라인(Hot-Line)을 구축해 돌발 상황에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