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舊)시장 정상영업 합니다!’
‘신(新)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오세요.’
지하철 1호선 노량진역에서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이어지는 육교를 건너면 간판 두 개가 나란히 붙어있다. 3년째 현대화 시장과 옛 시장으로 나뉘어 영업 중인 노량진 수산시장 내 갈등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지난 27일 오후 찾은 구시장은 황량했다. 수도권 수산물의 45%를 공급하던 옛 영광은 현대화 시장으로 넘어갔다. 현대화 시장 입주를 거부하고 구시장에 남은 127명의 상인들이 어두운 시장에서 저녁 장사를 준비 중이었다.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 수가 1331명인데, 10%가량만 구시장에 남은 셈이다. 대부분은 지하철역에서 시장으로 이어지는 통로에 위치한 점포였다. ‘A급’으로 분류되는 자리다. 주 통로에서 시장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빈 점포가 많았다. 횟집이 줄지어 서 있던 2층도 이전이 완료돼 건물 곳곳에는 ‘철거 중’ ‘X’ 같은 붉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구시장은 소음으로 가득했다. 북적이는 손님과 그를 잡으려는 상인들이 만들어낸 소음이 아니라 디젤 발전기가 돌아가는 소리였다. 지난 5일 수협이 구시장에 단전·단수 조치를 취하자 상인들이 대응 차원에서 들여온 것이다. 촛불과 휴대용 LED등으로 매장을 밝힌 점포도 눈에 띄었다. 물은 3일에 한 번씩 28t짜리 급수차를 불러서 공급하고 있다.
이들이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구시장에 남은 이유는 뭘까. 상인들은 현대화 시장이 상인과 고객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지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점포당 면적이 1.5평(4.95㎡)에 불과해 영업을 하기 너무 좁고, 통로 역시 좁게 설계돼 고객이 이동하기 불편하다는 것이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33년간 영업 중인 이모(64)씨는 “영업에 필요한 집기를 넣고 나면 철제의자 하나 펼 공간조차 제대로 안 나온다. 이렇게 엉뚱하게 건물을 지어놓고, 넘어오지 않으면 내쫓겠다니 말이 되는 소리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대료도 상인들이 불만을 갖는 대목이다. 현대화 시장의 월 임대료는 A급 매장 기준으로 71만원이다. 30만∼40만원 수준에서 배가 됐다. 이씨는 “임대료에 수도료, 전기료, 청소비 등 부대비용을 모두 합하면 실질적인 임대료는 월 100만원이 넘는다. 점포가 좁아서 점포 2개를 임대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러면 비용도 2배가 돼 결국 수산물 가격을 올려서 수지를 맞출 수밖에 없게 된다. 시장 설계부터 임대료 책정까지 상인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점포 사이의 벽 높이, 천장 높이, 수도 시스템이 일방적으로 만들어졌고 심지어 부실공사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수협 측은 구시장 상인들의 이런 주장이 ‘생떼’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점포 면적은 상인들의 결정이었다고 반박한다. 현대화 시장 설계 당시 수협 측은 3가지 안을 상인들에게 제시했다. 1안은 경매장과 점포를 모두 1층에 배치하고, 점포 면적은 4.96㎡(1.5평)로 유지하는 안이었다. 2안은 1안과 점포 면적은 동일하게 두고, 경매장 면적을 줄인 뒤 하역·주차 면적을 넓히는 내용이었다. 마지막으로 경매장은 1층에 두되, 점포는 1층과 2층에 나눠 입점시키는 대신 면적을 8.26㎡(2.5평)로 넓히는 게 3안이었다. 경매장과 점포가 모두 1층에 배치되길 원한 상인들은 2012년 11월 1안에 동의했다.
이뿐만 아니라 구시장과 현대화 시장 모두 점포 면적은 1.5평으로 동일하다고 설명했다. 수협 관계자는 “일부 상인들이 현대화 시장 점포가 더 좁다고 느끼는 건 구시장에서 고객통로까지 침범해 관행적으로 영업을 해 왔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구시장이 너무 낡아 더 이상 사용이 불가능하다며 현대화 시장을 지어 달라는 탄원서를 낸 것도 상인들 아니었느냐고 반문한다. ‘마지막까지 버텨서 보조금을 받으려는 수작’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도 그래서 나온다.
임대료 역시 오르긴 했지만 상인들이 비용 상승을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2014년 기준으로 점포당 연간 매출액은 평균 2억원 수준이다. 카드 매출만 따진 금액으로 현금 매출까지 더하면 연간 매출액은 더 올라간다. 연간 852만원의 임대료는 카드 매출액의 5%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다른 상가와 비교하면 배부른 소리라는 얘기다. 법원은 이미 수협 측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수협이 제기한 명도이전 소송에서 대법원은 지난 8월 수협 측에 최종승소 판단을 내렸다.
구시장 상인과 수협이 공방을 주고받으며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있다. 구시장 상인들은 현대화 시장을 영업에 적합하게 리모델링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수협은 이미 잘 운영되고 있는 현대화 시장을 바꿀 필요가 없다고 응수하고 있다.
여기에 수협의 단전·단수 조치는 둘 사이를 완전히 갈라놓는 계기가 됐다. 32년간 영업한 상인 김모(60·여)씨는 “물과 전기는 상인들 입장에서는 생명줄”이라며 “아무리 우리가 못마땅해도 30∼40년씩 장사한 상인들을 수협이 이런 식으로 대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 19일에는 수협이 굴착기를 동원한 구시장 주차장 폐쇄작업에 착수하며 상인들과 마찰이 일기도 했다.
반면 수협은 더 이상 구시장 상인들의 불법점유 행위를 방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2일 구시장 단전·단수 조치를 금지해 달라는 상인들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며 수협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상인들에게는 점포 사용 및 수익 권리를 주장할 만한 적법한 근거가 없다”며 “사실상 영업을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단전·단수 조치 해제를 요구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수협은 사태가 3년째 장기화되면서 입은 피해액이 285억원에 달한다고 추산하고 있다. 현대화 시장 마무리공사 지연 등을 감안하면 피해액은 더 불어날 것으로 본다.
수협은 남은 127명의 상인들을 현대화 시장 이전 대상이 아니라 퇴거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지난 9일까지 추가 이전 신청을 받았고, 이때까지 신청하지 않은 상인들은 시장을 떠나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협은 구시장 상인들이 입점하지 않아 비어 있는 점포를 현대화 시장에서 영업 중인 점포 확장에 활용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강 대 강’ 구도가 지속되면서 최종적인 사태 해결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