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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이냐”… 모욕·협박당하는 성폭력 예방교육 강사들



성폭력 예방교육 강사인 40대 여성 이모씨는 지난 8월 경기도의 한 남자 중학교에서 강의하던 중 한 학생에게 “메갈X이세요?”라는 소리를 들었다. ‘메갈’은 일부 남성의 여성 혐오에 ‘미러링(상대모방)’ 전략으로 대응해 주목받은 온라인 커뮤니티 ‘메갈리아’ 이용자를 뜻하며, 최근엔 페미니스트를 폄훼하거나 조롱하는 용어로 쓰인다. 이씨는 실제 일어난 여러 성폭력 사건을 예로 들며 설명했는데, 해당 학생은 가해자가 남성인 사례만 들었다는 이유로 화를 냈다고 한다.

이씨에게 이런 일은 다반사였다. 그는 “중학교에서 강연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남학생 2명이 버스정류장까지 쫓아와 ‘야 이X아, 나는 끝까지 로리 야동(어린이 음란물) 볼 거야’라고 소리친 일도 있다”며 “한번은 ‘죽창으로 죽이겠다’는 의미의 협박성 이미지 사진까지 받았다”고 27일 토로했다.

‘미투(#MeToo) 운동’이 확산되면서 학교와 각 기관이 성폭력 예방교육에 나서고 있지만 상당수 강사들이 현장의 백래시(backlash·반발)에 고통받고 있다. 이들은 모욕에 가까운 비난을 받아도 해당 기관이나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각 학교와 기관이 형식적인 일회성 교육에 치중하면서 성폭력 예방교육이 겉핥기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이다.

성폭력 예방교육 강사들은 강의 중 백래시가 ‘일상’에 가깝다고 입을 모았다. 한 여성 강사는 “최근 한 남자 고등학교에서 방송으로 강의를 하던 중 학생들이 방송실로 몰려와 ‘메갈이다’고 외치며 문을 걷어찼다”며 “한동안 바깥으로 나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백래시는 직장 강의에서도 빈번히 발생한다. 성폭력 예방교육 강사인 이진희 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원은 “대학 강의에서 한 남성 교수는 맨 앞자리에서 책을 봤다”며 “한 공공기관 강의에서는 ‘왜 다들 뒤에 앉았느냐’고 물으니 50대 남성이 ‘강사가 성희롱할까 봐서요’라고 외쳤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강사는 “한 남성 공무원에게 질문을 했더니 ‘신경 끄고 아줌마 할 일이나 하라’고 했다”고 했다.

강사를 보호해줄 기관은 없다. 성폭력 예방교육 강사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양평원)에서 교육받은 뒤 위촉증을 받고 강사 등록을 하지만 신분은 개인사업자다. 양평원이 강사 교육과 관리·감독을 맡고 있지만 보호 의무는 없다. 양평원 관계자도 “강사의 고충처리에 대한 규정이 따로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강사는 “강의 요청 기관이 갑이고 강사는 을인데, 버팀목 역할을 해줄 여성가족부와 양평원은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며 “현장에서 모욕을 당해도 ‘남자들을 너무 자극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식의 답변을 들을 때가 많다”고 했다. 다른 강사도 “양평원에 얘기하면 ‘강사가 더 잘했어야 했다’는 말만 돌아온다”며 “반대로 기관에서 항의가 들어가면 강사는 징계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백래시 탓에 성폭력 예방교육이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 다른 강사는 “욕을 먹으면 기가 죽을 수밖에 없고, 핵심을 짚기보다 에둘러 표현하거나 흥미 위주의 강의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강사들이 일터에서 겪는 백래시가 반복되는데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고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것은 문제”라며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성폭력 예방교육은 형식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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